마켓인사이트 5월 30일 오후 4시 45분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예상을 뒤엎고 하이브와의 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 재판부는 민 대표가 하이브 경영진과 대립각을 세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도어에 대한 배임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은 주주간계약 약정으로도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사례가 됐다.
'어도어 지분 80%' 하이브, 민희진 못 쫓아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는 민 대표가 하이브를 상대로 낸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소송에 30일 인용 결정을 내렸다. 민 대표는 31일 열리는 어도어 임시 주주총회에서 자신을 어도어 대표 및 사내이사에서 해임하는 안건에 하이브가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이달 초 가처분을 신청했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민 대표는 직위를 유지하게 됐다. 하이브는 어도어 지분 80%를 보유한 최대주주임에도 민 대표를 축출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법조계에선 인용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이브가 제기한 업무상 배임죄 수사가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에서 ‘배임 행위는 없었다’고 규정하기엔 부담이 클 것이라는 점에서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모색 단계를 거쳐 구체적인 실행 행위까지 나아갔다고 보기 어렵다”며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까지 제출된 주장과 자료만으로 해임·사임 사유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으면서 본안 판결에 앞서 가처분으로 하이브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할 필요성이 소명됐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민 대표 재직 기간을 다룬 주주간계약 조항이 상법상 주주 의결권보다 우선해 민 대표의 지위를 보장해줄 수 있느냐였다. 민 대표와 하이브 간 체결된 어도어 주주간계약의 제2조 1항은 ‘하이브는 민 대표가 어도어 설립일인 2021년 11월 2일부터 5년간 어도어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 직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어도어 주주총회에서 보유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 대표 측은 이 조항이 하이브의 의결권을 구속할 수 있는 피보전권리(가처분 신청으로 보전받으려는 권리)가 된다고 주장했고, 하이브 측은 주주권의 핵심인 의결권 행사를 가처분 형태로 사전 억지하는 건 함부로 허용될 수 없다고 맞섰다. 사적 계약에 앞서 상법과 민법만으로도 어도어 대주주인 하이브가 언제든 주총 결의를 거쳐 이사 해임이 가능하다고도 주장했다.

재판부의 이번 결정은 주주간계약 약정으로도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할 수 있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주주간계약을 소재로 한 가처분 소송 사례는 그간 드물었다.

하이브는 반전을 꾀하기 위해 민 대표의 배임 혐의를 입증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는 민 대표가 외부 투자자를 모집해 어도어를 독립시키고 소속 아티스트인 뉴진스를 빼갈 계획을 세웠다고 보고 지난달 민 대표를 업무상 배임으로 고발했다.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는 아니라고 판단한 민사 재판부와 달리 경찰 수사에선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재판부에서도 “민 대표가 뉴진스를 데리고 이탈하거나 독립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건 분명하다”고 인정한 상황이다.

배임 결론이 날 때까지 양측은 당분간 ‘불편한 동거’를 이어나갈 전망이다. 이번 판결은 민 대표만이 대상이기 때문에 측근인 신모 부대표와 김모 이사의 해임까지 막을 수는 없다. 31일 임시주총에서는 하이브 측 후보가 새 이사진으로 선임될 공산이 크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