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흘러간 문물…'아시아 500년 해양사'
[신간] 히틀러는 어떻게 예술을 정치에 이용했나…'히틀러와 미학의 힘'
▲ 히틀러와 미학의 힘 = 프레더릭 스팟츠 지음. 윤채영 옮김.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나는 예술가나 철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
총리로 임명된 후 아돌프 히틀러가 참모들에게 한 말이다.

히틀러의 꿈은 화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빈과 뮌헨에선 화가로도 활동했다.

그림에 대한 욕망은 컸지만, 뛰어난 재능은 없었다.

히틀러에게도, 이 세계에도 이는 불행이었다.

군에서 제대한 그는 그림이 아닌 연설에서 천부적 재능을 발휘하면서 정치의 길로 뛰어들었다.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순 없었지만, 정치에 예술을 적용할 정도의 재능은 있었다.

히틀러는 대중을 통제하고, 존경을 얻고, 권력을 과시하고, 자신을 기념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활용했다.

또한 자신의 통치를 문화적 차원에서 정당화했다.

미국 전직 외교관이자 문화 역사가인 저자가 히틀러의 예술가적 측면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했다.

저자에 따르면 히틀러는 장대한 퍼포먼스와 상징적인 연출의 대가였다.

밤 시간대에 조명을 활용하거나 빨강과 검정 깃발로 연단을 장식해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바그너 음악의 숭배자였던 그는 연설에서도 바그너 음악과 같은 극적 요소를 가미했다.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권력이 공고해질수록 히틀러는 독일 전통에 기반한 자신의 예술관을 대중에 강요했다.

"그의 꿈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독일인이 듣고, 자신이 사랑하는 오페라를 독일인이 관람하며, 그가 수집한 회화와 조각을 보고, 그가 건설한 건물들을 상찬하는 문화국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재능있는 예술가들은 살해되거나 떠났고, 독일 예술계는 퇴조했다.

생각의힘. 688쪽.
[신간] 히틀러는 어떻게 예술을 정치에 이용했나…'히틀러와 미학의 힘'
▲ 아시아 500년 해양사 = 에릭 탈리아코초 지음. 이재황 옮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70년 전, 중국 명나라 환관 정화는 인도양을 지나 아라비아를 거쳐 아프리카에 도착했다.

콜럼버스의 산타 마리아호가 구축함이라면 정화의 함대는 항공모함에 가까웠다.

3만명이 탑승한 정화의 선단 규모는 5척에 불과했던 콜럼버스 선단에 비할 바 아니었다.

수많은 배들이 정화의 지휘 아래 아시아 해로를 개척해 나갔다.

미국 코넬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가 일본에서 시작해 동아프리카에 이르는 해양 교류사(史)를 살펴본 책이다.

저자는 15세기부터 현재까지 500여년간 아시아 해로를 이용한 국가들의 교류사를 연결해 무역, 종교, 도시, 산물, 기술의 관점에서 파헤친다.

책에 따르면 인도양을 포함한 아시아 해로는 15세기 정화의 탐험 이후 주요 무역 항로로 자리 잡았으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열강이 아시아에 진출한 16세기부터는 교역의 중추로 자리매김했다.

바닷길은 정규 무역만 촉진한 데 그치지 않았다.

인도양, 남중국해를 비롯한 아시아 해양 전반에 걸쳐 밀수가 성행했다.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와 진주·해삼·향신료 등의 산물을 비롯해 다양한 관념과 물질이 바닷길을 통해 오갔다.

저자는 실크로드 못지않게 바닷길도 문화와 경제에 커다란 역할을 해왔으나 그간 과소 평가돼 왔다고 지적하면서 앞으로는 교역에 있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관측한다.

"상인들은 한때 날렵하고 우아한 배를 타고 이 모든 항구들 사이를 항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배들은 이제 커다란 골함석 화물 컨테이너를 싣고 다닐 테지만 말이다.

"
책과함께. 65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