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핵펀치는 앞톱니근, 호날두 대포알 슛은 긴발가락폄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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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간 해부학자
이재호 지음 / 어바웃어북
408쪽│2만2000원
스포츠에 담긴 인체의 속성을
해부학의 언어로 풀어쓴 책
이재호 지음 / 어바웃어북
408쪽│2만2000원
스포츠에 담긴 인체의 속성을
해부학의 언어로 풀어쓴 책
2002년 2월 24일.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 마이클 조던이 경기 중 쓰러졌다. 지난 수년간 무릎에 차오른 물 때문이었다. 염증으로부터 관절을 보호하는 활액이 과다 분비되며 무릎 주변이 심하게 붓게 된 것이다. '농구의 황제'로서는 안타까운 퇴임식이었다.
'에어 조던'이란 별칭으로 불렸던 압도적인 점프력은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도 물 건너 갔다. 하지만 해부학자인 이재호 저자는 조던의 무릎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었다. 알리의 주먹, 김연아의 발 등 스포츠 영웅들의 뼈와 살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했던 그들의 나이테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간 해부학자>는 스포츠에 담긴 인체의 속성을 해부학의 언어로 풀어쓴 책이다. 복싱과 태권도, 축구, 골프 등 하계 올림픽 28개 종목을 선별했다. 오는 7월 26일부터 열리는 파리 올림픽의 감동을 제대로 느끼기 위한 사전지식을 든든히 챙겨줄 만한 책이다.
스포츠나 해부학에 관한 고리타분한 개론서가 아니다. 각 종목에 담긴 선수들의 노력과 고뇌의 에피소드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문화예술 포털 아르떼에 '미술관 속 해부학자' 칼럼을 정기 연재하는 이재호 저자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한몫했다. 저자가 미술 못지않게 관심을 둔 분야는 스포츠다. 해부학과 스포츠는 오래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대 로마의 의학자 갈레노스가 콜로세움 주치의로 일하며 검투사들을 치료한 게 해부학의 시작이었다. 체조(gymnastics)의 어원도 '벌거숭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gymnos'다.
책은 1964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알리의 강펀치의 비결은 상체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앞톱니근에 있었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날개처럼 펼쳐진 근육은 우월한 사정거리로 이어졌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수식어가 그에게 붙게 된 이유다.
스포츠를 직접 즐기는 사람이라면 참고할 만한 요소가 많다. 예컨대 예측불가능한 궤적으로 날아가는 호날두의 무회전 킥은 단순 발목이나 발등 동작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종아리근육 중 긴발가락폄근이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4개의 발가락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임팩트가 발생한다. 호날두처럼 공을 차고 싶으면 종아리 앞쪽 근육을 집중적으로 단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부 종목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흔히 흑인 선수들은 높은 골밀도와 근육질 때문에 수영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물에 뜨는 부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이를 두고 "과학적으로 근거 없는 사실"이라며 "오히려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보는 게 설득력 있다"고 말한다.
물론 특정 해부학적 조건이 일부 종목에 유리한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신체 조건이 스포츠의 전부는 아니다. '할 수 있다'고 되뇌며 2016년 리우올림픽 금메달을 들어 올린 펜싱 선수 박상영, 거인들이 즐비한 NBA에서 183㎝라는 단신으로 2000년대 리그를 호령한 앨런 아이버슨 등의 역전 스토리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책이 조명하는 대상도 유리한 조건으로 트로피를 거머쥔 이들이 아니다. '최선을 향한 노력이 남긴 상처'에 주목한다. 저자는 "치열한 경쟁 원리는 소수의 승자만 각인할 뿐 다수의 패배자를 소멸시킨다"며 "아픔의 원인을 찾는 해부학자의 시선은 승자보단 패자의 상처로 모인다"고 말한다.
안시욱 기자
'에어 조던'이란 별칭으로 불렸던 압도적인 점프력은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도 물 건너 갔다. 하지만 해부학자인 이재호 저자는 조던의 무릎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었다. 알리의 주먹, 김연아의 발 등 스포츠 영웅들의 뼈와 살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했던 그들의 나이테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간 해부학자>는 스포츠에 담긴 인체의 속성을 해부학의 언어로 풀어쓴 책이다. 복싱과 태권도, 축구, 골프 등 하계 올림픽 28개 종목을 선별했다. 오는 7월 26일부터 열리는 파리 올림픽의 감동을 제대로 느끼기 위한 사전지식을 든든히 챙겨줄 만한 책이다.
스포츠나 해부학에 관한 고리타분한 개론서가 아니다. 각 종목에 담긴 선수들의 노력과 고뇌의 에피소드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문화예술 포털 아르떼에 '미술관 속 해부학자' 칼럼을 정기 연재하는 이재호 저자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한몫했다. 저자가 미술 못지않게 관심을 둔 분야는 스포츠다. 해부학과 스포츠는 오래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대 로마의 의학자 갈레노스가 콜로세움 주치의로 일하며 검투사들을 치료한 게 해부학의 시작이었다. 체조(gymnastics)의 어원도 '벌거숭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gymnos'다.
책은 1964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알리의 강펀치의 비결은 상체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앞톱니근에 있었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날개처럼 펼쳐진 근육은 우월한 사정거리로 이어졌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수식어가 그에게 붙게 된 이유다.
스포츠를 직접 즐기는 사람이라면 참고할 만한 요소가 많다. 예컨대 예측불가능한 궤적으로 날아가는 호날두의 무회전 킥은 단순 발목이나 발등 동작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종아리근육 중 긴발가락폄근이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4개의 발가락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임팩트가 발생한다. 호날두처럼 공을 차고 싶으면 종아리 앞쪽 근육을 집중적으로 단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부 종목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흔히 흑인 선수들은 높은 골밀도와 근육질 때문에 수영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물에 뜨는 부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이를 두고 "과학적으로 근거 없는 사실"이라며 "오히려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보는 게 설득력 있다"고 말한다.
물론 특정 해부학적 조건이 일부 종목에 유리한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신체 조건이 스포츠의 전부는 아니다. '할 수 있다'고 되뇌며 2016년 리우올림픽 금메달을 들어 올린 펜싱 선수 박상영, 거인들이 즐비한 NBA에서 183㎝라는 단신으로 2000년대 리그를 호령한 앨런 아이버슨 등의 역전 스토리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책이 조명하는 대상도 유리한 조건으로 트로피를 거머쥔 이들이 아니다. '최선을 향한 노력이 남긴 상처'에 주목한다. 저자는 "치열한 경쟁 원리는 소수의 승자만 각인할 뿐 다수의 패배자를 소멸시킨다"며 "아픔의 원인을 찾는 해부학자의 시선은 승자보단 패자의 상처로 모인다"고 말한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