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서브스턴스' 스틸컷 / ⓒIMDb
영화 '더 서브스턴스' 스틸컷 / ⓒIMDb
또다시 데(드)미 무어이다. 62세인 데미 무어가 다시 나체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나체란 단어는 왠지 좀 없어 보인다. 나신(裸身)이라 하면 좀 나을까. 그게 그거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데미 무어의 벗은 몸은 벗었기 때문에 화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나이가 62세라는 것이고 60이 넘은 나이에도 ‘미끈벅적스럽게시리’ 30대의 최강 몸매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복근이 장난 아니라고 한다. (마치 그 수많은 사진을 나만 안 본 척) 바로 그 외모 강박증이 그녀를 다시 세계적 스타덤에 올려놓고 있는 모양이다.

데미 무어는 며칠 전까지 프랑스 칸에 있었으며, 신작 <더 서브스턴스>가 이번 제77회 영화제 경쟁 부문에 나갔다. <더 서브스턴스>에서 데미 무어는 여지없이 벗어 재꼈다. 언론들은 일제히 '60대 데미 무어 누드 연기'식의 제목을 뽑았다. 그래도 그 사진은 싣지 못했다. ‘쪼잔한’ 황색 제목에 불과했다.
VANITY FAIR 잡지 커버 (1991년 8월호)
VANITY FAIR 잡지 커버 (1991년 8월호)
데미 무어의 벗은 몸이 가장 돋보였던 것은 애니 레보비츠가 찍은 그녀의 임산부 때 모습이다. 배가 백두산만큼 부른 데미 무어가 옷을 다 벗고 한 손은 이제 막 갓난아이의 몫이 될, 그래서 한껏 부풀어 오른 젖가슴을 가리고 또 한 손은 터질 듯한 산모의 배를 떠안은 채 찍은 사진이다. 시선은 카메라 너머를 보고 있다. 패션지 '베니티 페어'의 표지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레보비츠의 할리우드 셀럽 연작 시리즈 중 하나였으며 수잔 손탁의 레즈비언 애인이었던 애니 레보비츠답게 그녀의 페미니즘적 시선이 돋보였던 작품 중 하나이다.

여지없이 세계적으로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임산부가 벗은 몸을 보여준다는 것은 잉태에 대한 것, 수태와 출산에 대한 자랑스러움, 부끄러움이 없는 내추럴한 무엇, 더 나아가 인간의 몸이 지닌 원초적인 느낌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애니 레보비츠의 ‘모나리자’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이때의 데미 무어가 가장 예뻤다…는 표현은 맞지 않고, 아름다웠다. 1991년에 찍었으니 브루스 윌리스와의 두 번째 딸아이인 스캇 라루 윌리스를 임신했을 때로 보인다.
브루스 윌리스의 전처와 현재 처 / 데미 무어 인스타그램 캡처
브루스 윌리스의 전처와 현재 처 / 데미 무어 인스타그램 캡처
그렇다면 이런 사진을 찍고, 이런 사진을 찍게 한 동인(動因)이 된 남자 브루스 윌리스를 어떻게 버리겠는가. 둘은 1987년 결혼해 2000년에 이혼했지만 2023년 브루스 윌리스가 치매와 실어증 진단을 받았을 때도 그의 현 아내와 자신의 자식, 자신과 다른 자식들 틈에서 그의 곁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애정은 신뢰를 바탕으로 생길 수 있음을, 사랑이 우정이 될 수 있고 우정이 사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람이 바로 데미 무어이다. 그래서 나이 먹은 데미 무어가 더 좋아진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내가 그렇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녀, 데미 무어가 자꾸 연하의 남자만을 찾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남편 브루스 윌리스 이후 무어는 애쉬튼 커쳐(15살 연하)와 세 번째로 결혼을 했었고, 커쳐와 헤어진 후에는 다시 해리 모튼이란 남자와 열애에 빠졌는데 18살 아래였고 첫째 딸 루머 윌리스의 애인이었다. 아이 엠 러브야 뭐야 이거.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 <아이 엠 러브>에서 주인공 엠마(틸다 스윈튼)는 아들의 친구와 뜨거운 사랑에 빠지고 결국 모든 걸 버리고 그를 선택한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이고 마음속으로 은밀하게 그런 금지된 사랑을 욕망할 것이어서 하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데미 무어의 욕망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차마 우리 자신이 직접 그러지는 못하고 있지만.
영화 '세인트 엘모의 열정' 속 데미 무어와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 ©IMDb
영화 '세인트 엘모의 열정' 속 데미 무어와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 ©IMDb
워낙 오래된 얘기라 데미 무어가 영화다운 영화를 찍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초기작인 <세인트 엘모의 열정>이나 <어젯밤에 생긴 일> 등은 바야흐로 청춘물이라는 것은 이렇게 찍어야 정석이라는 것을 보여 준 작품이었다. 특히 <세인트 엘모의 열정>은 마틴 쉰의 두 아들 중 스페인계인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의 ‘전무후무’한 연출작으로 당시로서는 ‘전무후무’한 수작 청춘물이었다.
영화 '어젯밤에 생긴 일' 속 데미 무어와 로브 로우 / ©네이버 영화
영화 '어젯밤에 생긴 일' 속 데미 무어와 로브 로우 / ©네이버 영화
<어젯밤에 생긴 일>은 이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데다(그렇게 요즘 난리라는 OTT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로브 로우라는 뛰어났던 배우(미성년자 약취 혐의로 수십 년 퇴출됐다가 요즘 강아지 영화 등 가족영화로 컴백. 잠시 미드 <웨스트 윙>에서 스피치 라이터 역을 맡기도 했다.)나 이제 거의 잊힌 괴짜 배우 제임스 벨루시, 여전히 고혹적이지만 역시 이제는 방송 외에는 나오지 않는 엘리자베스 퍼키스 등이 나오는 작품이다. 아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묵시록적인 영화의 효시 격 작품으로 <세븐 사인>만 한 것은 없다. 원제는 ‘세븐쓰 사인(7th Sign)'이며 이게 어법에 정확한 것이긴 하다. 7개 사인이 아니라 7번째 사인이란 의미를 갖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말한 7번째 사인이 실현되면 세상이 망한다는 것, 인간이 신의 불과 물의 지옥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영화 '세븐 사인' 스틸컷 / ©다음영화
영화 '세븐 사인' 스틸컷 / ©다음영화
데미 무어는 여기서 임산부 애비 역으로 나오는데 자신이 낳을 아이가 신의 예시대로 영혼이 없는 아기가 될 것임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신은 늘 인간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못된 행동’을 하고 인간이 머뭇거리면 마지 못한 척 대속(代贖)을 할 누군가를 보내 준다. 애비와 그녀의 남편 러셀(마이클 빈)은 아이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릴 준비를 한다. 꽤 괜찮은 영화지만 아뿔싸 이 영화 역시 이제 시네마테크 외에는 볼 수 있는 곳이 없다.

데미 무어의 역작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랑과 영혼>이며 <어 퓨 굿 맨>이다. 이 영화 얘기에 여전히 침을 튀기는 남자(여자)는 조심하면 된다. 수준이 별로 높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남자(여자)가 그 작품 보다는 <폭로>나 <주홍글씨>가 낫지, 그러면 그 사람이 조금 나은 사람이다.
영화 '사랑과 영혼'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 '사랑과 영혼'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 '주홍글씨'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영화 '주홍글씨'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주홍글씨>는 나다니엘 호손의 1800년대 원작을 1994년에 ‘마구마구’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원작이 너무 오래된 시절의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원작을 너무 바꿨다느니, 심지어 결말까지 바꾸면 되느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게 더 좋았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가난 때문에 늙은 의사와 결혼했던 헤스터가 이 의사가 네이티브 아메리칸(소위 인디언)에게 납치돼 실종되자 목사인 딤즈데일(게리 올드만)과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지만, 남편이 살아 돌아오자 간통녀로 핍박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여인에게는 옛날에 가슴에 A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게 한 옷을 입게 했었다. 추한 역사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래도 이때 데미 무어는 처연한 연기를 그럴듯하게 해냈다.

<은밀한 유혹>에서는 솔직히 데미 무어의 연기는 몸의 매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야비한 로버트 레드포드와 무력한 남편 역의 우디 해럴슨의 갈등이 볼 만했다. 돈이 궁한 부부에게 재벌이 제안한다. 당신이 나하고 잔다면 당신 부부에게 백만달러를 주겠소. 게다가 이 재벌 젠틀한데다가 잘생기기까지 했다. 젠장. 자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영화이다.

< G. I. 제인 >은 작품 면에서 볼 때 말이 좋아 우국충정이지 미국식 국가주의, 쇼비니즘의 여성판이었다. 그러면 뭐 하나. 흥행은, 특히 국내 흥행은 대박을 터뜨렸다. 머리를 박박 깎고 나와서 엄청나게 하드 트레이닝을 받는 여성 장교 후보생으로 나온다. 그 ‘생고생’을 했지만, 이 영화 이후 데미 무어는 서서히 내리막을 걸었다. 2000년으로 접어들면서 부터이다.
영화 'G.I. 제인' 스틸컷 / ©다음 영화
영화 'G.I. 제인' 스틸컷 / ©다음 영화
그래도 케빈 코스트너와 나왔던 <미스터 브룩스>(2007)에서 여형사 역으로 나온 데미 무어는 매우 댄디하고 좋았다. 다리가 예쁜 여자는 바지 태도 잘 어울린다. <미스터 브룩스>는 살인중독에 빠진 한 성공한 비즈니스 맨 얘기인데 여형사가 그의 뒤를 바짝 쫓는다. 아무튼 몸매나 얼굴 성형을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법했다. 그래도 뭐, 여자가 예뻐지고 싶어 하는 것이 실정법 위반이 아닌 바에야 뭐 어쩌겠는가.
영화 '미스터 브룩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 '미스터 브룩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안타까운 얘기이지만 전 남편 브루스 윌리스가 지금 치매와 파킨슨으로 죽어 가고 있는 것이 데미 무어를 정신적으로 한 단계 올려놓은 느낌을 받는다. 그녀가 이전의 패밀리들, 전 남편의 현재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은 결코 퍼블리시티로 보이지 않는다. 인생은 별거 아니며 성형도 별거 아니라고, 그렇게 큰 신경을 쓰거나, 스트레스받으며 살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데미 무어는 이제 와서야 성형 괴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냥 지금 정도에서 잘 늙어가면 좋겠다. 그러면 그녀는 지금부터라도 청순미의 극치였던 <사랑과 영혼> 때만큼 사랑받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늙은이가 될 것이다. 늙은 여자와 사랑하는 법. 바로 그걸 데미 무어가 그걸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매력적인 관계가 될 수 있겠는가. 남자나 여자나 진짜 사랑은 늙어서 하는 법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