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가 최열, 조선 실경 그림 집대성 '옛 그림으로 본' 연작 마무리
우리에게 실경이 없었다고?…"조선은 실경의 나라, 실경의 천국"
미술사학자 최열이 조선시대 실제 풍경을 그린 그림 1천300여점을 집대성해 소개한 '옛 그림으로 본' 연작이 '옛 그림으로 본 조선'(전 3권) 출간으로 마무리됐다.

'옛 그림으로 본' 연작은 최열이 지난 30년간 모아온 자료들과 연구 내용을 풀어낸 결과물이다.

2020년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을 시작으로 2021년 '옛 그림으로 본 제주'가 출간됐고 이번에 '옛 그림으로 본 조선'으로 나머지 지역의 실경 그림을 정리했다.

시작은 실경 산수화에 대한 관심이었다.

저자는 "예전에는 조선을 두고 실경이 없는 나라라고 배웠다"고 말했다.

"조선은 중국 산수화를 수입해서 산수화를 그렸기 때문에 조선의 풍경화는 실제 산수를 그린 것이 아니라 중국 산수를 그려 관념 산수화라고 배웠죠. 겸재 정선 정도가 금강산 같은 극히 일부 실경을 그렸다는 정도였죠. 그렇지만 실제 경치를 그리지 않았다니, 그럴 리가 없다는 궁금증도, 반발심도 생겼죠. 겸재만 금강산을 그렸을까, 다른 사람도 그리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연구를) 시작했죠."
'우리에게는 실경이 없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해 "실경의 숲에서 서른 해를 보냈다"는 저자는 "그 세월 동안 내가 깨우친 건 이 나라 조선은 실경의 나라요, 실경의 천국이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실경이 없었다고?…"조선은 실경의 나라, 실경의 천국"
'실경의 천국'이 된 데는 18세기 조선에 불었던 유람 열풍이 한몫했다.

유람 열풍을 타고 집에 명승지 그림을 걸어두고 누워서 즐기는 '와유'(臥遊)가 인기를 끌었고 이런 수요에 부응해 화가들이 앞다퉈 길을 떠나 실경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여러 실경 그림을 확인했지만, 처음부터 다섯권 출간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1천만명이 사는 대도시이자 600년 수도였던 서울의 옛날 풍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에 그동안 여기저기 단편적으로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서울' 편을 펴냈다.

41명의 그림 125점을 담은 '서울'편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를 다녀온 느낌'이라는 독자 리뷰가 올라오는 등 호평을 받으며 쇄를 거듭했고 제주의 실경화 130여점을 모은 '제주'편으로 출간이 이어졌다.

우리에게 실경이 없었다고?…"조선은 실경의 나라, 실경의 천국"
출간이 이어진 배경에는 자신이 사는 지역의 옛 풍경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의 요청도 있었다.

책을 펴낸 혜화1117의 이현화 대표는 "출간 이후 다양한 자리에서 저자를 만난 독자들의 일관된 질문이 이어졌다"며 "'내가 사는 지역에 관한 그림은 언제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독자들의 요청을 등에 업고 출간된 '옛 그림으로 본 조선'은 금강산과 강원도를 각각 한 권으로, 그리고 경기, 충청, 전라, 경상을 하나로 묶어 총 3권으로 구성됐다.

명승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사는 지역이나 고향의 옛 모습을 그림으로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화가와 그림 소개는 물론, 해당 지역에 얽힌 여러 이야기, 그림의 세부 장면, 화가의 이동 경로 등도 함께 담았다.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미술사 연구자들에게는 알려진 작품이지만 상당수는 대중들에게는 낯선 그림들이다.

겸재나 단원 김홍도 같은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화가가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향토 화가도, 이름 모를 작가도 많다.

'명화'보다는 실경 그림을 한데 그러모았다는 데 방점이 있다.

"이번 실경화 정리가 갖는 의미는 소수 유명한 화가의 '명품' 그림보다는 그 중간층을 모았다는 데 있습니다.

예술의 기준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하고 풍성하고 다채로워야 하는데 우리 미술사는 그동안 유명한 화가들에 치우친 점이 있었죠."
'옛 그림으로 본' 연작은 대형 출판사가 아닌 1인 출판사가 이뤄낸 성과라는데서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출판계 환경에서 커다란 판형에 컬러 도판을 가득 싣고 각 권당 400∼500여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을 잇달아, 특히 이번처럼 3권을 한 번에 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에게 실경이 없었다고?…"조선은 실경의 나라, 실경의 천국"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