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반의 개업까지 막나"…'전문의 중심 병원' 구상에는 "불가능할 것"
복귀 가능성에는 "힘든 사람은 일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는 있어"
"생활고에 과외·병원행정직·배송알바…그래도 전공의보다 높은 시급"
전공의들 "정부, 데드라인 운운하지 말고 빨리 사직 처리해달라"
정부가 집단이탈 석 달째를 맞은 전공의들의 복귀를 촉구하고 있지만, 전공의들은 되레 "사직 처리를 빨리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공의로서의 '사명감'을 박탈당한 상황에서 더는 전공의 생활을 이어 나갈 이유가 없는데, 정부가 사직 처리를 해주지 않고 일반의 개업까지 막는 게 말이 되느냐는 얘기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복귀가 불가피한 전공의에 대해서는 복귀를 '묵인'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일부 전공의는 생활고로 과외나 병원 행정직, 배송 아르바이트 등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공의들 "정부, 데드라인 운운하지 말고 빨리 사직 처리해달라"
◇ "사명감 무너졌다…사직 처리나 빨리 해달라"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주요 수련병원 100곳을 기준으로 전날 출근한 전공의는 659명으로, 전체 전공의(1만3천여명)의 5.1% 수준에 불과했다.

정부가 전공의 이탈 석 달째인 이달 20일을 복귀 시한으로 규정하고 이날까지 복귀해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대부분의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공의들은 정부가 이탈 전공의에 대한 면허 정지라는 '엄포'를 계속 놓으면서도, 정작 전공의의 사직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질타했다.

사직 전공의 A씨는 "정부는 '진짜 데드라인'이라면서 계속 복귀 시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진짜'가 자꾸 번복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데드라인이 지났음을 인정하고, 전공의 사직서를 처리하면 될 것을 계속 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이달 20일부터 전공의 복귀 시한이 도래했다고 하면서도,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복귀 시한을 늦출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전공의들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이미 '사명감'이 무너졌다고 답했다.

전공의 마지막 연차이지만 이번 사태로 사직서를 냈다는 B씨는 "한 때는 나도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사명감이 있었다"며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까지 욕을 먹는데 이것을 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었다.

더 노력할수록 욕을 먹는 사회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옛날에는 전문의라고 하면 더 어려운 케이스를 다룰 수 있다고 대우를 많이 해줬다면, 오히려 지금은 반대"라며 "책임이 더 부과되고, 소송에서도 돈을 더 많이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은 대우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종의 사명감 때문에 긴 노동시간을 견디며 수련 과정을 밟았다면, 이번 사태로 인해 '심리적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사직 전공의 C씨는 "정부에 정이 많이 떨어졌고, 이제는 적법하지 않은 행동에 화도 안 난다"며 "사직 처리를 해주지 않는 것도 적법하지 않은데, 면허 정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공의들 "정부, 데드라인 운운하지 말고 빨리 사직 처리해달라"
◇ "어려움 겪는 전공의 복귀할 수도"…'전문의 중심 병원'엔 회의적 반응
인터뷰한 전공의, 전임의들은 주위에서 돌아가겠다는 사람은 없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복귀를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는 형성됐다고 전했다.

사직 전임의 D씨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아무도 블레임(비난) 안 한다"며 "힘든 사람은 일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공의는 생활고로 인해 부업으로 내몰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공의 B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생겼고, 이들은 지인을 통해서 의사 직군이 아닌 일을 구했다"며 "과외나 병원 행정직, 배송 알바 등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시급이 워낙 낮아서 이런 일자리가 (임금을) 더 높게 쳐준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제시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D씨는 "지금도 대학병원이 겨우 굴러가는데, 월급이 전공의보다 더 많은 전문의, PA(진료보조) 간호사 등을 고용하고 전공의 근무시간을 줄인다는 것 자체가 의료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 경우 정부가 수가(의료행위에 대한 보상)를 높여서 병원이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줘야 하는데, 정부에게 불리한 이러한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전공의들은 병원들의 적자가 커지고, '전공의 착취'마저 힘들어질 경우 결국 '의료 민영화'로 향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았다.

전공의 B씨는 "대학병원이 파산하고, 인건비 후려치기마저 안 되면 의료 영리화가 추진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서민들에게 더 큰 불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