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라·배영재 씨…사제지간으로 시작해 공동번역으로 부커상 최종후보 올라
런던서 황석영 작가와 일정 소화…"수상 못하더라도 새로운 경험 기대돼요"
'철도원 삼대' 두 번역가 "어려운 점 많았지만 희열 느껴요"
"민담 같은 이야기들을 다룬 부분에서 희열을 많이 느꼈어요.

신통방통한 능력의 '신금이'나, 죽은 뒤에도 가족을 꾸준히 도와주는 '주안댁'이 나오는 장면들 말이죠."(김소라 번역가)
"어려웠던 점이 너무 많았는데… 기관차의 내부나 영등포의 지형, 집 내부구조에 관한 묘사 등이 어려웠어요.

기관차 내부에 대한 설명이나 이미지를 찾아보기도 하고 책에 묘사된 대로 집 내부구조를 그려보기도 했지요.

"(배영재 번역가)
황석영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함께 영어로 옮긴 김소라·배영재 번역가는 20일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부분과 어려운 점들을 이렇게 꼽았다.

'철도원 삼대'는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The International Booker Prize) 최종 후보(숏리스트)에 올라 있다.

부커상 국제부문은 특히 작가와 번역가의 노고를 동등하게 인정해 상금(총액 5만파운드. 8천만원 상당)도 균등하게 지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의 영어판 'Mater 2-10'이 이처럼 큰 주목을 받은 데에는 작가 본인의 문학적 역량 외에도, 작품 속의 까다로운 우리 말 표현과 복잡한 역사적 문맥 등을 매끄럽고 구체적인 영어로 옮긴 두 번역가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두 사람은 '철도원 삼대'의 영어판을 함께 작업한 공동번역자이지만 그 전엔 일종의 '사제'의 연으로 맺어진 사이라고 한다.

"저는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아카데미에서 김소라 선생님의 수업을 듣던 학생이었어요.

'철도원 삼대'를 번역해 달라는 요청이 김 선생님께 들어왔을 당시 선생님이 임신 중이셨는데 분량이 많은 책이다 보니 혼자 작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돼 제가 공동번역자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배영재)
"원래 제가 임신 상태 때문에 영재 씨를 '솔로 번역자'로 추천하려고 했어요.

영재 씨가 혼자 하기 싫다고 해서 그다음에 공동 번역 가능성은 고려했어요.

(웃음)"(김소라)
배 번역가가 '철도원 삼대'의 번역에 뛰어들었을 때에는 이 소설의 1~2장을 이미 김소라 번역가가 초벌 번역을 마친 상태였다.

'철도원 삼대' 두 번역가 "어려운 점 많았지만 희열 느껴요"
배 번역가가 그다음 장인 3장부터 11장까지 번역을 진행하고, 김 번역가 출산 후 휴식기를 마친 뒤 12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다시 번역을 맡았다.

이후 서로의 원고를 상호 비교·검토하면서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수정한 뒤 영국 출판사(Scribe UK)의 편집자와 함께 다시 원고 전체를 교정한 끝에 지난해 5월 영어판이 출간됐다.

올해로 15년 차 중견 번역가인 김소라(소라 김 러셀) 씨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이중언어 구사자다.

신경숙, 공지영, 배수아, 김보영, 황석영, 편혜영 등의 작품들을 영어권에 꾸준히 소개하며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등에서 번역가 양성에 참여한 그는 베테랑 한국문학 번역가로 손꼽힌다.

특히 김 번역가는 황석영과 인연이 깊다면 깊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부커 인터내셔널 1차후보(롱리스트)에 올랐던 황석영 장편 '해질 무렵'(영어제목 'At Dusk')도 그의 손으로 영어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김 번역가는 이번에 '철도원 삼대'를 번역하면서 영어권의 반응이 좋으리라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영어권 독자들이 아무 관심이 없을 것 같았으면 번역을 아예 안 했을 것"이라면서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보다는, '철도원 삼대'가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번역을 맡기로 했다"고 했다.

김 번역가에게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좀 더 편하다면, 배 번역가에게는 한국어가 확고한 모국어다.

이런 점들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부커상 최종후보라는 성과를 내는 데 한몫 했다.

"저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4년 정도 거주했고 성인이 된 뒤 대학원 공부를 위해 2년간 미국에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번역은 가끔 하다가 10년 전쯤 한 기관의 영문에디터로 일하면서 다시 정착하게 됐어요.

그러다 한국문학번역원이 번역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을 알고서 그곳에서 공부하게 되면서 한국문학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배영재)
'철도원 삼대' 두 번역가 "어려운 점 많았지만 희열 느껴요"
배 번역가는 "(부커상) 후보에 오른 것도 뜻밖인데 최종후보까지 올라 무척 영광"이라면서 "후보에 오른 다른 작품들도 훌륭해서 수상을 기대하기보다는 작가님과 사전행사와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함께 하게 될 새로운 경험들이 기대가 된다"고 했다.

두 번역가는 현재 황석영 작가와 함께 초청돼 런던 현지에서 최종후보작 낭독회, 문학 토크 등을 통해 현지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21일 저녁(현지시간)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열리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에도 이들은 작가와 동등한 자격으로 참석한다.

문학 번역을 업으로 삼은 이들에게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 문학 읽기의 즐거움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아래와 같은 배영재 번역가의 답이 돌아왔다.

"문학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완전히 다른 나라나 시간, 혹은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세계를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공감 능력도 생기지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조금씩 깨달을 수 있으니 소설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지 않을까요?"
'철도원 삼대' 두 번역가 "어려운 점 많았지만 희열 느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