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7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연구개발(R&D)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전면 폐지하라고 지시한 것은 국가 간 패권 경쟁으로 치닫는 글로벌 첨단산업 환경을 고려한 것이라는 평가다.

R&D 예타 '전면 폐지'…첨단 기술개발 속도낸다
R&D 예타는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사업을 대상으로 하는데, 예산 낭비를 막는 제도의 취지 때문에 경제성 평가를 우선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패 가능성이 큰 도전적 연구를 꺼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심사 기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예타 심사 기간은 7개월을 원칙으로 하지만 실제 통과에는 통상 1년 이상 걸린다. 그러다 보니 속도전이 벌어지는 글로벌 R&D 경쟁에서 예타가 과학·기술계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거셌다. 8년간 9960억원을 투자하는 ‘양자 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 사업’은 2022년 예타를 신청했는데 아직 결과를 받지 못했다. 예타 폐지가 과학·기술계의 숙원 과제로 꼽힌 이유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도 예타와 비슷한 사전평가 체계를 두고 있다. 하지만 예타처럼 사업의 당락을 결정짓는 구조는 아니다. 일본의 사전평가는 300억엔 이상 사업을 대상으로 하는데, 사업을 추진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R&D 예타가 사라지면 미래 원천 기술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산 낭비를 막는 장치가 사라지면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은 사업에 대규모 세금이 투입되면서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사후 검증 프로세스 구축 등을 통해 혈세 누수를 막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올해 삭감된 R&D 예산을 내년에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린다는 방침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보다 4조6000억원 축소된 R&D 예산(26조5000억원)이 내년에 31조원 이상으로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가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잡았던 내년도 R&D 예산은 27조6000억원이다.

박상용/도병욱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