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90(가칭) 생산을 내년 12월 시작한다. 대형 SUV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차종이다. 배터리만으로 가동하는 전기차 전용 대형 SUV는 제조사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평가된다. 현대차는 자체 개발한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2세대)을 GV90에 적용해 효율과 안정성을 모두 갖춘 ‘시그니처’ 전기차 모델을 글로벌 무대에 선보이겠다는 전략이다. ○뜨거운 대형 전기 SUV 시장 선점1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GV90를 포함한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적용 계획이 담긴 견적요청서(RFQ)를 주요 자동차 협력사에 보냈다.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은 ‘eM’으로도 알려졌다. 견적요청서 등에 명시된 각 차종의 연간 생산 예정 물량은 △GV90 2만1000대 △GV80 6만8000대 △GV70 4만 대 △G80 5만1000대가량이다. 현대차는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적용한 제네시스 프리미엄 4개 차종을 내년 12월부터 2033년까지 총 113만2000대 생산해 판매할 계획이다.핵심은 GV90다. 현대차는 지난 3월 미국 뉴욕에서 전장 5.25m의 대형 전기 SUV 네오룬 콘셉트카(사진)를 선보였다. GV90는 이를 기반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전기를 100% 동력원으로 쓰는 대형 SUV를 내놓은 완성차 업체는 없다. 테슬라X도 준대형 SUV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대형 전기 SUV는 전기차 및 배터리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는 끝판왕”이라며 “전기차 및 배터리 세계 1위인 중국의 전기차 제조사들도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86개 모듈러 시스템 선행 개발현대차로선 GV90를 글로벌 무대에 선보임으로써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의 성능을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GV90는 앞·뒷문 사이 기둥인 ‘B필러’가 없는 코치도어(양문형 설계)가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차체의 구조적 강성을 끌어 올린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덕분에 B필러 없이도 안전한 프리미엄 대형 SUV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현대차의 한 협력사 대표는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은 차체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에 특수 합금을 이용한 일체형 주조 방식 등을 적용해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차체를 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구조적 강성 확보와 함께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의 또 다른 특징은 ‘확장성’이다. 소형부터 초대형, 나아가 트럭과 같은 상용차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확장성이 가능한 기술력은 ‘모듈화’다. 현대차그룹은 총 86개 모듈러 시스템을 선행 개발했다. 레고 블록처럼 차급 구분 없이 활용할 수 있어 빠른 신차 개발이 가능하다.주요 부품을 대량 생산한 뒤 다양한 차종에 적용하면서 원가 절감 효과도 커졌다. 현대차그룹은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적용한 모델은 기존 동일 차종 대비 20% 이상 원가 절감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열관리 시스템을 적용해 배터리 에너지 효율도 기존 대비 50%가량 높였다. 차급과 사용 목적, 소비자 선호에 따라 다양한 배터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의 특징이다. 중저가 모델엔 삼원계(NCM) 배터리뿐 아니라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도 장착할 예정이다.현대차그룹은 2030년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200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세운 바 있다.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정부가 추진 중인 연구개발(R&D) 시스템 개편안은 국가 R&D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범부처 성격의 정부 위원회가 추린 주요 R&D 산업을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해 국가 기술 경쟁력을 빠르게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들 산업을 비롯해 첨단 분야에 R&D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를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전략적으로 지원할 R&D 추려 예산 편성현재 국가 R&D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과학기술혁신본부가 편성과 심의를 담당한다. 각 부처가 필요한 R&D 사업을 과기정통부와 기획재정부에 전달하면 혁신본부가 예산을 배분하는 구조다. 이때 R&D 심의는 대통령 자문 기관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속한 기술 분야별 전문위원이 맡는다.정부가 추진하는 R&D 시스템 개편안은 혁신본부가 예산을 배분하는 과정에 기술자문회의뿐 아니라 기술 분야별 정부 위원회도 참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양자전략위원회,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 국가인공지능위원회, 국가우주위원회 등을 설치하거나 지위를 높였다. 핵심 기술에 범국가적 역량을 집중한다는 취지에서다. 정부는 이들 위원회를 R&D 편성 과정에 참여시켜 추진이 시급한 R&D 사업을 중심으로 범정부 지원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정부 관계자는 “R&D 심의 과정에서 R&D 시행 부처 간 소통과 협업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전했다.이에 따라 정부는 총리실 산하에 있는 바이오헬스혁신위, 양자전략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격상하는 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인공지능위는 다음달 출범을 앞두고 있고, 국가우주위는 지난 1월 위원장이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으로 격상됐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국가 핵심 기술과 관련한 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함으로써 R&D 선정뿐 아니라 예산 편성까지 이어지도록 국가 기술 양성에 신경 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D 예타 면제 가닥정부의 ‘R&D 예타 폐지’도 국가 핵심 기술 양성에 속도를 내겠다는 정부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예타는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 경제성을 평가하는 제도다. 그간 과학기술계에선 예타를 통과하는 데 길게는 수년이 소요되다 보니 R&D 예타가 글로벌 경쟁의 걸림돌이란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8년간 9960억원을 투자하는 ‘양자 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 사업’은 2022년 예타를 신청했지만 아직 결과를 받지 못했다.다만 R&D 통합 심의는 예산 편성 권한에 관한 제도이다 보니 일부 부처에서 반발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R&D 시스템 개편안은 부처 간 이견이 적지 않아 이번 재정전략회의에서 구체적인 방식이 발표되지 않고 늦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정부는 내년도 정부 예산 편성 과정에서도 범부처 협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첫머리발언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은 범부처 협업을 대폭 강화해 개별 부처가 아니라 국민 입장에서 편성하겠다”며 “저출생 대응, 청년 지원, 첨단·전략산업 인력 양성 등 주요 투자 과제를 중심으로 부처 간 연계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수요자인 국민 관점에서 정부 과제에 예산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우주 등 4개 국가전략기술과 관련한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해 범부처 차원에서 심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첨단 분야 R&D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폐지하는 동시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사업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국가 R&D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13일 대통령실과 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R&D 시스템 개편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범부처 성격의 정부 위원회가 예산 심의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현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각 부처로부터 R&D 수요를 제출받은 뒤 이를 심의해 예산을 편성하는 구조다. 그동안 각 부처가 비슷한 사업을 중복 지원하는 등 국가 R&D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앞으로는 혁신본부가 예산을 심의할 때 양자전략위원회,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 국가인공지능위원회, 국가우주위원회 등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범부처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할 R&D 사업을 선정해 예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일단 첨단바이오 분야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한 뒤 R&D 시스템 개편안을 다른 국가전략기술에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첨단 분야에서 R&D 속도를 높이고 규모도 키우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