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매트로 전선을 가렸다. 공하성 교수에 따르면 피복이 벗겨질 경우 이런 매트가 열 발산 막아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사진=김영리 기자
축축한 매트로 전선을 가렸다. 공하성 교수에 따르면 피복이 벗겨질 경우 이런 매트가 열 발산 막아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사진=김영리 기자
"비 오는 날 이거 밟아도 괜찮으려나?"

서울 중구 명동 거리를 지나던 한 시민이 붐비는 노점 거리의 바닥을 내려다보며 일행에게 이같이 말했다. 바닥에는 축축하게 젖은 코일 매트로 덮인 전선이 보였다.

노점 뒤에 자리하고 있는 상가 건물로 진입하기 위해 여러 시민이 발 매트와 그 밑에 있는 전선을 밟고 지나갔다. 전문가들은 "매트 밑에 있는 전선의 피복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면 매트의 습기가 곧바로 스며들면서 누전 사고가 일어나기 십상"이라고 경고했다.
11일 오후 명동 거리의 모습. 인파 너머 방수 비닐로 비를 막은 노점이 보인다. /사진=김영리 기자
11일 오후 명동 거리의 모습. 인파 너머 방수 비닐로 비를 막은 노점이 보인다. /사진=김영리 기자
휴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비 소식에 나들이 계획을 실내로 변경하는 이들도 많지만, 비에 굴하지 않고 야외서 관광을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 11일 오후 7시경 서울 종로구, 중구 일대서 연등회 행사가 열려 시내버스가 한시적으로 명동 거리와 가장 가까운 롯데 영플라자 정류소에 정차하지 않았다. 교통이 불편한 상황에도 우산과 우비로 무장한 인파가 명동 거리를 활발하게 누비고 있었다. 우비도 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여행을 즐기는 외국인 관광객 무리도 있었다.
(왼쪽부터) 11일 비 오는 날 오후, 멀티탭 콘센트가 좌판 벽면에 덮개 없이 노출된 모습. 바로 옆에 물기가 맺혀있다. 바닥에 닿을 듯 말듯한 멀티탭과 릴선. 릴선은 장시간 사용 시 열로 인한 합선을 막기 위해 풀어서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진=김영리 기자
(왼쪽부터) 11일 비 오는 날 오후, 멀티탭 콘센트가 좌판 벽면에 덮개 없이 노출된 모습. 바로 옆에 물기가 맺혀있다. 바닥에 닿을 듯 말듯한 멀티탭과 릴선. 릴선은 장시간 사용 시 열로 인한 합선을 막기 위해 풀어서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진=김영리 기자
날씨와 무관하게 명동으로 관광객이 몰리면서, 우천 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노점 거리가 무방비로 노출돼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불감증으로 큰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날 돌아본 현장에선 전선과 멀티탭이 이렇다 할 안전장치 없이 사용되고 있었고, 지붕에 덮는 방수 비닐 역시 점포 측면을 덮고 있지 않아 빗물이 좌판 주위로 튀고 있었다.

노점 허가제에 참여한 상인들은 인근의 전기 분전함을 통해 전기를 사용한다. 이에 야외용 긴 전선(릴선)들이 바닥에 널려있었다. 절연 피복이 벗겨지면 바로 누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구조다. 비 오는 날인데도 콘센트가 땅에 닿을 듯 말듯 위험하게 노출된 모습도 보였다. 릴선은 장시간 사용 시 열로 인한 합선을 막기 위해 풀어서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필요한 길이에 맞게 칭칭 감아 사용하는 점포도 많았다.

전기선 주변에는 화구가 있어 작은 불씨에도 큰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소화기를 비치한 점포는 명동 지하 쇼핑센터부터 명동성당을 잇는 중앙대로의 노점상을 기준으로 10곳이 채 안 되는 모습이었다. 중구청에 따르면 노점에 소화기를 비치하는 것은 권고일뿐, 의무 사항은 아니다.

상인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분식을 판매하는 노점 거리 상인 A 씨는 "여름철에 장마처럼 장대비가 내리면 장사를 하지 않는다"면서도 "이 정도 비는 지붕에 비닐 덮으면 괜찮다"고 말했다. 반면 점포 옆에 소화기를 둔 상인 B 씨는 "비 오는 날은 소화기가 있어야 안심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명동관광특구 내 안전사고에 대한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명동 상권이 인파로 붐비며 '상권 1번지'의 명성을 되찾았다는 진단이 내려지면서다. 7일 한국부동산원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명동 상권 공실률이 1.8%를 기록했다. 이 지역 공실률은 2022년 초 42.1%에서 지난해 말 19.7%로 감소하더니, 올해 1분기에는 5년 최저 공실률까지 기록하며 급감했다.
11일 오후 명동 거리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11일 오후 명동 거리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야외서 전기를 사용하다 보면 직사광선에 노출되면서 피복이 쉽게 손상된다"며 "이 상태서 비 오는 날에도 영업을 잇게 되면 누전, 합선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절연 피복이 벗겨지면 여기서 열이 발생하고, 불이 붙게 된다"며 "발 매트로 덮여 있는 전선의 피복이 벗겨져 있다면 안쪽으로 열이 축적되면서 사고 위험이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야외서 전선을 장시간 이용하려면 전선 배관으로 한 번 더 감싸야 하는 것이 정석"이라며 "화구를 이용해 조리하는 노점은 초기 진화를 위해 소화기를 비치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중구청에 따르면 현재 명동에서 허가받고 노점을 운영하는 점포의 수는 360여개다. 2016년 명동 상권 노점 실명 허가제를 시행하던 당시 처음 신청 점포의 수는 366개였다. 규모에 있어서 8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다.

명동 노점 거리 안전 대책과 관련, 중구청 관계자는 "4월 29, 30일에 걸쳐 거리 가게 운영자 대상으로 안전 교육을 진행했다"며 "점포마다 소화기를 비치할 것을 꾸준히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시로 안전 관련 안내 책자를 배포하고 소방차 진입로 확보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