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레티치아 세바스티아니 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장
"복원 작업 만족시킨 건 한지뿐…공급 물량 부족 아쉬워"
伊 기록유산 복원 전문가 "한지, 유네스코 등재될 가치 있어"
"평생 종이를 연구해온 저로서는 한지가 당연히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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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기록유산 복원 전문가인 마리아 레티치아 세바스티아니 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ICPAL) 소장은 최근 로마 주이탈리아한국문화원에서 한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기록물 복원에서 묶음 작업이 있는데 한지는 섬유가 긴 종이여서 우수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최근 우리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본부에 '한지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의 섬유를 재료로 삼아 만드는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를 뜻한다.

세바스티아니 전 소장은 한지의 우수성에 대해 "특히 그림이 들어간 기록물 복원에서 한지는 적합한 종이"란 점을 강조하며 한지의 유네스코 등재와 관련해 도움이 필요하다면 응할 의사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2020년 12월 ICPAL을 퇴직한 뒤 이듬해부터 이탈리아 저작권협회(SIAE)에서 한지를 이용해 역사적인 기록물의 복원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한지와 인연을 맺은 것은 ICPAL에 재직 중이던 2014년. 한국 정부와 업무협약(MOU)를 맺고 이듬해부터 여러 '한지장'(韓紙匠)이 만든 한지를 받아 화학적, 생물학적, 물리적, 기술적인 분야의 연구를 통해 이탈리아 기록물 복원에 사용할 수 있는 한지를 선별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의령 신현세 한지장이 만든 3종과 전주 최성일 한지장의 2종 등 총 5종을 이탈리아 고서 복원지로 선정했다.

세바스티아니 전 소장은 "ICPAL에 있을 때 5종 외에 복원 작업에 사용한 종이는 없었다"며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종이를 사용하려 했으나 복원 작업의 모든 기준을 만족시킨 건 한지밖에 없었다.

먼지 제거 작업이 어려운 기록물도 있었는데 한지를 사용해서 원본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伊 기록유산 복원 전문가 "한지, 유네스코 등재될 가치 있어"
그에 따르면 한지로 복원한 역사적인 기록물로는 6세기 비잔틴 시대의 복음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필 노트 '새의 비행에 관한 코덱스', 로마 가톨릭 수도사 성 프란체스코의 친필 기도문, 이탈리아 화가 피에트로 다 카르토나의 17세기 작품 등이 있다.

그는 "ICPAL은 역사 기록물의 가치가 높은 것이 아니라면 복원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가치가 높은 복원 작업에 한지가 사용됐음을 알아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중 인류무형문화유산인 6세기 복음서는 다양한 색깔과 그림이 담겨 복원이 어려운 기록물이었다"며 "워낙 오래된 기록물이 견디지 못해 접착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언젠가 복원 부분을 다시 대체해야 한다면 한지로 간단하게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세바스티아니 전 소장은 한지 물량이 부족해 이탈리아 여러 연구소에서 한지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ICPAL은 한국 측과 협업해 한지로 복원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다른 연구소는 어려움이 있다"며 "이들 연구소가 다른 종이나 각자 채널로 구한 한지를 사용할 경우 기록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인증한) 한지 공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세종대왕의 굉장한 팬"이라며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에 대한 존경심을 표한 그는 "최종 꿈은 전 세계 문화가 연결되고 이를 바탕으로 관계가 강화되는 세상"이라며 "이것은 저를 비롯한 문화계 종사자들의 꿈"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