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밀로 라우 서면 인터뷰…"죽음을 현실적인 '우리의 문제'로 접근"
'췌장암 사망' 여성 영상으로 출연…"실존하지 않는 인물과 대화하는 경험"
한국 초연 앞둔 연극 '에브리우먼'…"연대의 당위성 그린 작품"
"최악의 순간에 처한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다른 이들뿐입니다"
죽음과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는 주제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는 스위스 연극 '에브리우먼'(Everywoman)이 국립극장의 초청으로 이달 10∼1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서 한국 관객과 처음으로 만난다.

에브리우먼은 두 여성이 스크린과 무대에서 자전적 경험을 들려주며 '모든 사람은 결국 죽는다'라는 주제를 일깨우고, 서로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당위성을 그려낸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연극'의 선봉자로 불리는 연출가 밀로 라우는 2일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심화한 집단이기주의로 연대의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현대사회에 '또 다른 연대의 당위성'을 제안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202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주년 개막작으로 처음 무대에 오른 에브리우먼은 1920년 공연된 후고 폰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Everyman)을 모티브로 한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예더만과 달리 에브리우먼은 실제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여성과 또 다른 여성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죽음을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한국 초연 앞둔 연극 '에브리우먼'…"연대의 당위성 그린 작품"
작품에서는 먼저 췌장암으로 지난해 1월 사망한 일반인 여성 헬가 베다우가 생전에 녹화한 영상이 스크린으로 재생된다.

실제 암투병 환자를 출연시킨 것은 죽음이라는 삶의 근본적 문제를 추상적인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로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라우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죽음을 피하고자 노력하는 모습과, 동시에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는 모습을 같이 담으려고 했다"며 "실제 경험을 하고 있는 인물을 그려내고자 했고, 그렇게 베다우를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실제 무대에는 스위스 배우 우르시나 라르디가 올라 베다우와 소통하며 삶과 죽음을 고찰한다.

200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하얀 리본'에서 남작 부인역을 연기한 라르디는 이번 연극에서 라우와 공동으로 극본을 맡았다.

라우는 "함께 극본을 쓴 라르디와 이번 작품을 좀 더 현대적인 방식으로 접근해보자고 생각을 모았다"며 "그래야 진정한 '모든 여성(에브리우먼)'을 대변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무대 위 라르디의 연기와 베다우의 영상을 교차로 보여주며 두 여성이 마치 실제로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연출됐다.

영상 속 탁자에 홀로 앉은 베다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실제 무대 위에 선 라르디가 이에 반응하는 식이다.

라우는 "서로에게 반응하고, 때로는 토론하는 느낌이 날 수 있도록 연출했다"며 "관객은 이 공연을 통해 더 이상 실존하지 않고 영상 속에서만 살아 숨 쉬는 인물과 실제로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 초연 앞둔 연극 '에브리우먼'…"연대의 당위성 그린 작품"
에브리우먼은 '현실을 꼬집는 파격적인 주제를 무대 위에 최대한 실제와 가깝게 재현한다'고 평가받는 라우의 대표작이 될 전망이다.

사회활동가, 언론인으로 활동한 라우는 2007년 국제정치살인연구소를 창단한 후 2009년 정치 연극 '차우셰스쿠의 마지막 날들'로 이름을 알렸다.

콩고 내전의 원인을 밝히는 '콩고 재판'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이 점령한 이라크를 다룬 '모술의 오레스테스' 등으로 다큐멘터리 연극의 새장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회적 이슈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그의 작품을 두고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라우 본인도 "정치와 매우 밀접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세간의 평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어떤 것도, 어떤 식으로든지 정치적이지 않거나 사회적이지 않을 수 없다"며 "그래서 에브리우먼에도 저의 가치관과 생각, 사회적 성격, 태생지, 시작점, 부모님의 직업, 살아온 시대상 등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투영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예술과 정치의 상호관계에 대해선 명확한 경계선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역설했다.

그는 "저 역시 문화예술에 정치적 신념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작품을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논의가 일어나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한국 초연 앞둔 연극 '에브리우먼'…"연대의 당위성 그린 작품"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