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서 현장 취재…5·18단체, 고인 추모 조전
"5·18은 군인 폭동" 전세계에 알린 외신기자 테리 앤더슨
지난 21일 미국 뉴욕주 그린우드 레이크에서 향년 76세에 별세한 테리 앤더슨(Terry A. Anderson) AP통신 전 특파원은 5·18 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렸던 '불굴의 기자 정신'을 실천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22일 한국기자협회 발간 5·18 특파원리포트와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에 따르면 앤더슨 전 특파원은 1980년 당시 광주에 머무르며 열흘간의 5·18 항쟁을 직접 취재·보도했다.

고인이 생전 한국기자협회에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그와 외신기자들은 1980년 5월 광주를 찾아 참혹한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시민군과 계엄군을 상대로 취재 활동을 이어갔다.

동료 기자와 광주에 파견된 고인은 "목도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10∼15㎞ 떨어진 우체국 전화기를 사용했다"며 "미군 기지 전화기를 사용하려고도 했지만, 문제를 우려한 장교들로 사용이 제한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본사로 송고한 원본 기사에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만행과 함께 고인이 목격하고 취재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전세계로 타전됐다.

"5·18은 군인 폭동" 전세계에 알린 외신기자 테리 앤더슨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투입된 특파원들의 취재·보도 과정을 담은 책 'AP, 역사의 목격자들'에도 고인이 직접 겪은 당시 상황이 증언으로 남아있다.

책에는 고인의 인터뷰도 소개됐는데, 그는 "계엄군은 '폭도 3명'을 죽였다고 말했지만, 직접 세어 본 시체만도 179구에 달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광주의 상황을 알리고 싶어 하는 시민군들이 외신 기자들을 환영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고인은 "Press(보도)와 AP 표지판이 달린 차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닐 때면, 모든 군중이 우리를 성원하는 갈채를 보냈다"고 전했다.

'5·18은 군인에 의한 폭동'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계엄군들이 상점·시내 버스까지 쫓아가 젊은이들을 폭행했다고 증언했다.

그의 취재기는 2020년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이 전직 언론인으로부터 기사 원본 등을 기증받으면서 일부 공개됐다.

고인이 송고한 원본 기사 등 13장·해당 기사가 인용 보도된 THE KOREA TIME 등 신문 스크랩이 전남도청 복원홍보전시관에 전시됐다.

오월 항쟁 취재를 마친 고인은 1983년 레바논 수석 중동 특파원으로 파견됐고, 레바논 무장세력에 인질로 잡혀 7년 동안 억류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이후 오하이오 대학 언론대학원장·플로리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다가 은퇴했고, 버지니아주에 있는 한 농장에서 별세했다.

5·18 기념재단 관계자는 "고인은 5·18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기자 정신을 투철하게 발휘한 인물이다"며 "현지에 조전 등을 보내 고인을 추모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