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디자인하우스 기업들이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를 공략해 매출원을 다변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우물 밖' 도전 나선 K반도체 디자인하우스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인 에이디테크놀로지, 가온칩스 등이 해외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가 만든 설계도를 파운드리에 맞춰 기술을 지원하는 기업이다. 의류 제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의상 디자이너(팹리스)가 드로잉(시스템 반도체 설계)을 마치면 디자인하우스가 옷을 생산하기 위해 옷감 구입 및 마감을 최적화하고 재봉소(파운드리)는 이에 맞춰 옷을 만드는 식이다.

최근 다양한 형태의 드로잉이 쏟아지고 있는 데다 설계 난도도 높아지면서 대형 재봉소(TSMC, 삼성전자)일수록 처리할 일감 작업이 세분화됐다. 파운드리는 자신들이 다 커버하지 못하는 중소형 팹리스 고객의 영업을 디자인하우스에 맡겨 제작에만 집중하려는 추세다.

국내는 팹리스 시장이 협소하다. 디자인하우스가 덩치를 키우려면 해외 진출이 필수다.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올해가 미국 진출의 성과를 거두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7월 실리콘밸리에 세운 미국법인은 조만간 수주 소식을 전할 것이라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회사는 미국 외에도 2018년 베트남 호찌민, 2022년 독일 뮌헨에 법인을 세웠다.

또 다른 DSP인 가온칩스는 일본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22년 일본에 법인을 세운 가온칩스는 지난 2월 도멘디바이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도멘디바이스는 매년 3조~4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일본 최대 반도체 상사로,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반도체와 전자부품을 유통한다. 두 회사는 일본에서의 점유율 확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일본은 소니, 파나소닉, 르네사스 등 팹리스는 탄탄하지만 디자인하우스 개념은 제한적이다.

세미파이브, 코아시아 등의 DSP도 미국 인도 등에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TSMC의 국내 유일한 디자인하우스인 에이직랜드는 첫 해외 진출 국가로 미국을 점찍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합작법인 오하나를 설립했다. 지난달엔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첫 기업설명회(IR)를 열었다.

중국 수요를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팹리스는 3400여 개로 국내(약 200개사)보다 많지만 파운드리는 한정적이다. SMIC, 화훙반도체가 있지만 초미세 공정은 TSMC나 삼성전자에 뒤처진다. 국내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면 현지 개발 수요를 국내로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디자인하우스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내 반도체기업의 미국 진출을 위한 연구·사업개발(R&BD)센터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디자인하우스가 미국 및 중국의 시스템 반도체 연구개발(R&D) 수요를 발굴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박준규 에이디테크놀로지 대표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큰 곳으로 가야 디자인하우스가 성장한다”고 밝혔다.

한국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는 593조원이다. 한국은 20조원으로 점유율이 3.3%에 불과하다. 미국은 323조원으로 54.5%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뒤를 이어 유럽(70조원·11.8%) 대만(61조원·10.3%) 일본(55조원·9.2%) 중국(39조원·6.5%) 순이다. 김용석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는 “빅테크의 자체 칩 개발 수요가 늘고 AI 반도체가 확산하면서 중간에서 설계 철학을 조율해줄 디자인하우스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