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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국·일본 대 북한·중국·러시아'

한국 미국 일본과 북한 중국 러시아가 밀착하면서 '신(新)냉전' 대립 구도가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전쟁을 매개로 군사적 연대에 나섰고, 최근엔 고위 인사의 교류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역시 최고위급 인사가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면서 북·중 관계에 신경쓰는 모양새다. 이에 맞서 한·미·일의 '삼각 공조'도 강화됐다.

다만 이 같은 대립구도는 결국 북한이 원하는 흐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이 한·미·일 협력에 맞선다는 명목으로 중·러와 밀착을 원하고, 이 같은 대립 구도를 핵 보유에 대한 당위성을 인정받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또 각국 모두 대립 구도에서 저마다 다른 속내를 품고 있어 '동상이몽' 속에서 전략적인 접근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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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하는 북중러와 한미일


북한은 최근 중국과의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3일 중국 서열 3위인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을 만나 북·중 관계 발전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북이나 김정은의 방중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높다. 북·러에 비해 소원한 것으로 여겨졌던 북·중 관계가 올해 수교 75주년을 맞아 다시 가까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두 나라는 고위급 인사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중국을 방문해 왕이 외교부 장관과 쑨웨이둥 차관을 만났으며, 올 1월에는 쑨 차관이 다시 방북했다. 또 북한 노동당 대표단은 지난달 중국을 방문해 공식 서열 4위의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과 서열 5위인 차이치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 등을 만나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이미 가속화하고 있다. 두 나라는 전쟁을 매개로 무기거래에 나서는 등 최근 급속히 가까워졌다. 인사 교류도 잇따랐다. 최근 정무림 북한 보건상을 단장으로 하는 보건대표단이 러시아를 방문했다. 최선희 외무상은 지난 1월 러시아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러시아 측에선 연해주 주지사와 문화부 차관이 지난달 방북했다. 이르면 상반기 푸틴 대통령이 방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외교부가 이달 초 군수물자 운송과 북한 해외노동자 송출을 통해 북핵 개발 자금 조달을 도운 러시아 선박, 기과, 개인 등에 독자 제재를 부과하자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대응이 뒤따를 것"이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기도 했다. 앞서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을 반대한 것도 러시아다. 지난 1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서 한국은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가 부당하다는 점을 성토했지만, 북한 측은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와 관련 "매우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맞선 한·미·일은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합의 이후 삼각 공조 체제를 강화 중이다. 미국·영국·호주의 군사 동맹인 '오커스'에 한국과 일본의 합류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엔 한·미·일 연합 해상 훈련을 진행했고, 오는 8월 을지프리덤실드에선 북한의 핵 사용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갖고 훈련을 시행할 계획이다. 지난 10일엔 기시다 일본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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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 기반 '국제질서' 틀에서 대응해야"


이 같은 대립 관계를 두고 각국이 저마다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신냉전 구도는 북한이 원하는 흐름이고, 여기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한·미·일과 대립하는 구도를 만들어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끌어올리고 핵 보유에 대한 당위성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정은은 2021년부터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제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며 신냉전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반면 중국 입장에서는 이미 양자 관계로도 관리가 가능한 나라들을 굳이 '북·중·러'라는 3자 구도를 묶어 국제사회와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왕따' 격인 북한과 러시아를 끌어안고 3자 구도를 만들어 부담을 짊어질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당장 3자 구도를 와해시키지는 않을 테지만, 양자 관계를 중심으로 조절에 나서며 3국 간의 구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전략도 본격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원칙'에 입각한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진영주의에 전도된 대립 구도가 아니라,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확립한다는 원칙 하에 한·미·일 공조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라는 표현은 지난해 한·미·일이 합의한 캠프 데이비드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당시 3국 정상은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고 중국을 저격하기도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진영 논리로 갈 게 아니라, 국제질서라는 큰 틀 하에서 움직여야 한다"며 "미국도 때로는 질서를 훼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에도 동료국가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 더 이상 '국익'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입각한 실리 외교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 견제'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는 반면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게 1순위인만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강 교수는 "중국 압박을 우선 과제로 삼은 미·일과 한국은 다른 의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차별화해서 부각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또 "북한이 태도를 바꿔서 협상 테이블로 나오지 않는 한 우리는 북핵 이슈를 최대 의제로 삼고 삼각 공조를 강화하는 스탠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