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자본주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오랜 기간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 여겨졌다. 그래서 흔히 기업의 최우선 목표는 주주 이익 극대화라고 한다. 그런데 2019년 8월, 미국 재계를 대표하는 최고경영자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에서는 기업의 목적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정의했다. 주주 이익 추구는 여전히 회사의 주요한 목적이지만, 시장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공존을 도모하는 것 역시 기업의 지향점이라고 했다.

고객에게 지불한 가격을 뛰어넘는 가치를 전달하고, 구성원이 행복하게 일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협력업체와 윤리적으로 거래하고 지역사회 번영을 지원함으로써 주주의 장기적 가치 창출을 약속한다는 선언이다. 이를 두고 여러 매체에서는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접어든 상징적 사건이라고 전했다. 이해관계자 경영을 강조하는 이들은 지구환경 보존, 사회적 번영, 직원 행복, 고객 관계 등 과거에는 기업 경영에서 소외된 요소들이 앞으로의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이 될 것이라 말한다.

재무 지표는 분명 기업 성과를 대변하는 훌륭한 잣대다. 하지만 그 한계 역시 뚜렷하다. 이유는 재무지표가 ‘과거’에 얼마나 잘했느냐의 결과로 나타나는 후행지표(Backward-looking)이기 때문이다. 후행지표에 바탕을 둔 경영 시스템은 과거 실적을 토대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내다본다. 그렇기에 앞으로 얼마나 잘할 것이냐를 제대로 보여줄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급변하는 환경에서 후행 지표에만 의지해 경영 활동을 할 경우, 자칫 미래 기업 가치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LG전자 MC(Mobile Communications) 사업본부는 이동통신 및 스마트기기 전담 조직이었다. 2000년대 후반 최고 실적을 구가했는데, 2009년에는 세계시장에서 1억 대의 피처폰을 팔며 매출 15조 원, 영업이익 1조 원 이상에 이른다. 매해 7~10%의 영업이익률을 보였기에 MC 사업본부의 장밋빛 미래를 예측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듬 해인 2010년, 실적이 급락하며 7000억 원 대의 손실을 기록한다. 스마트폰 중심으로 업계가 급변하면서 피처폰 시장이 축소된 것이 원인이다. 이후 10년간 MC 사업본부는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결국 누적된 적자를 버티지 못한 채 2021년 7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시대를 맞아 평가보상 시스템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성과급 운영방식은 기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타깃 인센티브나 이익공유제, 또는 두 가지의 혼합형을 운영한다. 타깃 인센티브는 사전에 설정한 성과 목표의 달성 정도에 비례하여 성과급을 지급한다. 여기에서 성과 목표는 대체적으로 매출이나 이익 등이 해당한다. 이익 공유제는 회사가 벌어들인 전체 이익 중 일부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두 운영 방식에 명확한 차이가 있으나, 성과급 지급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 재무 이익이란 점은 같다.

몇 해 전, 대기업 A사에서 성과급 논란이 크게 일었다. 한 직원이 공정한 성과급을 받길 원한다며 성과급 지급 기준을 공개해 달라고 전 임직원에게 메일을 보낸 사건이다. 이에 이익공유제를 운영하던 A사는 EVA(경제적 부가가치)의 20%에서 영업이익의 10%로 성과급 산정 기준을 바꾼다. 그런데 EVA와 영업이익, 둘 다 이익의 한 종류다. 산출식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과거 결과로 따라오는 이익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결국 성과급 기준을 바꾸든 바꾸지 않든, 일 년 동안 이익을 얼마나 창출했느냐에 따라 성과급이 결정되는 구조라는 점은 변함없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등에 대응해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때 기업들은 몇 가지 고민을 마주한다. 우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기에, 이 과정에 구성원들이 기꺼이 도전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대규모의 장기 투자가 일어나기 때문에, 일 년 단위 성과보다는 중장기 마일스톤을 하나씩 밟아가는 사고와 행동을 강조한다.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라는 변화를 감안할 때 평가보상 시스템이 지향할 방향은 명확해 보인다. 첫째, 연 단위 이익 달성을 넘어, 장기적 기업 가치에 영향을 주는 선행적(Forward-looking) 요소와 성과급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일이다. 더불어 현재가 아닌 미래 실현될 이익으로 성과급을 지급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실제로 임원 보수나 단기 성과급을 산정할 때 재무 성과 외에 ESG 성과를 연동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딜로이트 컨설팅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 상장사의 24%가 임원 성과급에 ESG 경영 성과를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회사 다이이찌산쿄는 임원에게 지급하는 주식을 산정할 때 ESG 지수 움직임을 10% 적용한다. 미쓰비시케미컬은 임원 성과급을 결정할 때 환경부담 경감, 종업원 만족도 등의 항목을 포함시켰다.

유럽과 미국 기업은 일본 기업보다 더 적극적이다. 영국은 100대 기업의 66%가 단기 성과급에 ESG 실적을 반영한다. 미국 기업의 반영률은 52%에 달한다. 영국의 다국적 에너지 기업 로열더치셸은 2019년부터 임원 스톡옵션을 산정할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등 환경 분야 성과를 20% 반영한다. 미국 애플에서는 직원 다양성을 높이는 임원은 그렇지 못한 임원보다 연말 현금 보너스를 20% 더 받을 수 있다.

국내 기업 역시 이런 흐름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LG화학은 2021년 성과급 상한을 기존 500%에서 1000%로 두 배 높였지만, 환경·안전 등 부정적인 ESG 이슈가 발생할 경우 성과급 규모를 줄일 수 있다. 고객 가치 훼손 여부도 성과급 산정 기준에 포함된다.

장기 성과급에는 총주주수익률(TSR: Total Shareholder Return)이 많이 활용된다. 머서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임원 장기 성과급에 총주주수익률을 사용하는 기업은 57%에 달한다. 이해관계자 경영 활동의 성과를 일일이 측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이해관계자 가치 제고 노력들이 궁극적으로 주가를 높일 거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에, 주가를 기반으로 성과급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단, 주가는 단기간의 변동성이 크지 않은 편이다. 또한 짧은 기간 동안 주가 상승 목표를 설정할 경우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기에, 주가를 활용한 보상은 대체로 3년 이상의 장기 성과급에 연계한다.

일반적으로, 총주주수익률 그대로를 성과급 산정 기준으로 활용하기보다는, 경쟁 기업 또는 동종 업계 대비 상대적 위치에 따라 성과급 지급 수준을 결정한다. 주가는 산업 특성, 경기 사이클, 정치 등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통제 불가능한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구글은 S&P 100대 기업의 총주주수익률과 비교하여 주식 보상을 지급한다. 비교 그룹 대비 총주주수익률이 높으면 지급하기로 한 주식의 최대 두 배까지 받을 수 있다.

단기 재무실적이 기업 가치를 대변하는 시절은 지났다. 이해관계자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가치를 내재화할 때 비로소 진정한 기업 가치를 만들게 될 것이다. 재무 성과 외에 ESG, 고객 가치, 직원 행복 등 다양한 비재무적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킨 평가보상 시스템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이르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김주수 MERCER Korea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