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3개월 거주한 아동문학가 장경선, '그 여름의 사할린' 출간
'사할린 한인 학살' 소재 그림책 작가 "아픔 공감할 수 있길"
"러시아 남부 사할린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한국인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곳입니다.

아이들이 슬픈 역사를 이해하고, 그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죠."
사할린 한인 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그림책 '그 여름의 사할린'(작은숲)을 15일 출간한 아동문학가 장경선(48)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무거운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내고자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한 후 사할린의 군경과 자경단 등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킬지 모른다며 무차별 살해했다.

당시 소련군의 재판기록을 통해 밝혀진 바로는 카미시스카, 시크카, 에스토루, 미즈호 등에서 희생자가 나왔다.

장 작가가 그림책의 배경으로 한 사건은 약 35명의 한인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미즈호(현 포자르스코예) 마을이다.

장 작가는 2013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 분야 해외 창작거점 예술가파견사업'에 선정돼 3개월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거주하면서 사할린 한인사를 연구했다.

일제강점기 등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글을 주로 써온 그는 사할린 동포 2세인 박승의 전 러시아 사할린국립대 한국어과 교수의 자택에 머물면서 사할린 곳곳을 답사하고 한인들을 인터뷰하면서 학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5년 3월 펴낸 동화집 '나는 까마귀였다'에서 미즈호 마을 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나는 까마귀였다'와 '전채련 할머니의 눈물' 등 두 편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이번에 출간한 그림책은 이 동화집 내용 일부를 뽑아 다듬고 정리한 것이다.

2018년에는 강제징용된 오빠를 따라 사할린으로 이주한 명자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 '안녕, 명자'를 펴낸 바 있다.

'사할린 한인 학살' 소재 그림책 작가 "아픔 공감할 수 있길"
장 작가는 "사할린을 소재로 하는 작품은 대부분 강제징용의 애환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며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등 학살을 주로 다뤄온 입장에서 민간인 학살에 중점을 두다 보니 미즈호 마을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즈호 마을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서로 결혼할 만큼 한 가족처럼 오순도순 정답게 살았기 때문에 우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며 "아픈 역사는 철저히 묻혔기 때문에 다시 짚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즈호 마을의 두 친구인 일본인 소년 마쓰야마와 조선인 소녀 하나가 등장하는 이번 책에서 가해자인 일본인이 무릎을 꿇는 장면을 설정했다.

장 작가는 책으로나마 일본이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사할린 남쪽 코르사코프의 '망향의 언덕'에는 조각배 모양의 위령탑이 있다.

붙어 있지 않고 갈라진 배가 그날의 아픔을 말해 준다"며 "다행히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마침내 사할린 한인들은 고향 땅을 밟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할린 수도 유즈노사할린스크는 아름다운 도시다.

최소한의 개발을 추구해 자연 속에 집과 건물을 만들었다"며 "척박한 땅을 풍요롭게 만든 건 우리 민족이었다.

사할린 한인들은 러시아인들과 어깨를 당당히 하고 산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