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 평창] '이랴∼' 호리소와 함께 비탈밭 가는 산골 농부

구순 노모 모시며 매년 손수 쟁기질…안빈낙도 삶 묻어나

"이랴, 이랴∼! 호리소야, 비탈진 밭 갈자꾸나.

"
지난 12일 강원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 용소골의 비탈진 밭에서 '이랴, 이랴' 소몰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순의 노모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평생 농사를 지어온 이병우(72) 씨가 호리소와 함께 올봄 농사를 준비하는 소리다.

15∼16세 때부터 호리소를 몰았다는 이씨 할아버지의 쟁기질은 능수능란했다.

땅이 깊게 갈릴라치면 쟁기를 살짝 들어 올려주고, 얕게 갈리면 힘을 주어 쟁기를 더 잠기게 해 균일한 깊이로 고랑을 냈다.

코뚜레를 한 4살짜리 암소 역시 쟁기가 연결된 멍에를 이고서 이씨 할아버지의 소리에 따라 비탈진 밭에 하나둘 고랑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씨 할아버지는 트랙터 등 농기계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자기 집 앞 비탈밭을 해마다 호리소를 이용해 갈아왔다.

그는 "비탈지고 수분이 많은 토질이라 무거운 트랙터로 밭을 갈면 땅이 단단해져 장마가 지면 물이 빠지지 않아 작물이 썩는다"며 "이런 땅은 소로 밭을 갈아야 토질이 부드러워지고 작물도 잘 자란다"고 말했다.

이어 "생후 5∼6개월 된 송아지 때부터 훈련을 시켜놔서 이제는 내 눈빛만 봐도 밭일하러 가는 줄을 알고, 소리만 들어도 좌우로 방향을 잘 틀면서 말을 잘 듣는다"고 소를 칭찬했다.

이씨 할아버지의 비탈밭 너머에는 깎아지른 듯한 뾰족산과 코끼리 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고즈넉한 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코끼리 산은 두 눈을 연상케 하는 작은 동굴 2개 사이로 폭포가 떨어져 생긴 자국이 긴 코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올해도 큰 욕심 없이 조상 대대로 경작해온 땅에서 고추 농사를 짓겠다는 이씨 할아버지의 너털웃음 속에서 안빈낙도의 삶이 느껴졌다.

(글·사진 = 이재현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