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 HD일렉 사장 "5년치 주문 찼다…美 AI 열풍에 공장 신·증설도 검토"
2019년 12월 HD현대일렉트릭 배지를 단 조석 사장은 HD현대중공업 그룹이 50년 만에 들인 첫 외부 최고경영자(CEO)다. 정통 관료(산업통상자원부) 출신으로 2013년 1883억원 손실을 낸 한국수력원자력을 사장 취임 2년 만에 2조4721억원 흑자 기업으로 바꾼 수완을 높이 사서다.

당시 조 사장은 시험성적서 위조 등의 여파로 멈춰선 원자력발전 3기를 빠르게 정상화한 동시에 한수원의 뿌리 깊은 순혈주의를 깨는 등 조직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석 매직’은 HD현대일렉트릭에서도 재현됐다. 2018~2019년 2년 연속 1000억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낸 이 회사는 조 사장 취임 직후인 2020년 ‘턴어라운드(영업이익 727억원)’에 성공했고, 올해는 영업이익 40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조 사장은 11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주력 제품인 변압기 주문 물량이 2028년까지 대부분 찼다”며 “기존 공장 증설은 물론 신규 공장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초호황인 전력 기기 시장

HD현대일렉트릭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전력기기 시장은 초호황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지난달 “인공지능(AI) 붐으로 부족해진 게 1년 전엔 신경망 칩(NPU)이었다면 다음엔 변압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그대로다. 변압기는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가정, 공장 등에 송전되기 전에 전압을 높이거나 낮추는 기기다.

조 사장은 변압기 수요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미국을 꼽았다. 그는 “급증하는 AI 수요로 미국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데이터센터가 들어서고, 반도체·전기차 공장 신설도 줄을 잇고 있다”며 “하나같이 ‘전기 먹는 하마’여서 변압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HD현대일렉트릭의 울산과 미국 앨라배마 공장은 완전가동 중이다. 변압기 가격도 5년 전보다 두 배 정도 올랐다. 그는 “안 그래도 AI 붐으로 변압기가 부족한데 20~30년 전에 대거 설치한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까지 겹쳤다”며 “지금 변압기를 주문하면 2029년에야 받을 수 있을 정도”고 말했다.

HD현대일렉트릭의 미국 전력설비 수주액은 2021년 3억9000만달러(약 5280억원)에서 지난해 17억8000만달러(약 2조4101억원)로 네 배 이상 늘었다.

중동 지역 전력 기기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 석유화학 플랜트 증설이 이어지는 데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추진 중인 ‘네옴시티’ 프로젝트도 시작된 덕분이다. 조 사장은 전력시장만큼은 중국의 ‘저가 공세’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전력 기기는 신뢰할 수 있는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젠 ‘양적 성장’ 노린다”

조 사장은 취임 후 수익성이 떨어지는 계약을 취소하는 등 ‘질적 성장’에 매달렸다. 전통 제조업인데도 지난해 두 자릿수(11.6%)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배경이다. 조 사장은 “앞으론 ‘양적 성장’에도 힘을 줄 계획”이라며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울산과 앨라배마 공장 증설에 나선 데 이어 신규 공장 건설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올해 매출 3조원에 영업이익 4000억원 이상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업이익을 작년(3152억원)보다 30% 정도 늘리겠다는 얘기다. 실적 호조에 힘입어 조 사장 취임 당시 1만원 안팎이던 주가는 이날 23만2000원으로 뛰었다.

유럽 시장 공략도 강화한다. 조 사장은 “영국 덴마크 등지의 친환경 발전 시설에 변전소 납품을 늘리고 있다”며 “까다로운 유럽 고객을 잡기 위해 영업망을 확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전 사업도 확대한다.

그는 “배전기기 수요도 늘어나는 점을 감안해 충북 청주에 중저압차단기 스마트팩토리를 건설 중”이라고 말했다.


김우섭/김형규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