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풀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의료계에선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간 만남 이후 그제 처음으로 ‘의미 있는 만남’이란 공식 평가가 나왔다. 의료계는 총선 후 이번주 후반께 합동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의대 정원에 대한 의료계의 통일된 요구사항이다. 윤 대통령은 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오랜 논의를 거쳐 과학적으로 산출된 최소 증원 규모”라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은 그럼에도 의료계가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통일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 등 정부가 의대 정원과 관련해 참고한 3개 보고서의 저자들도 의사가 1만 명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정유석 단국대 의과대 교수는 의사 부족으로 지역병원에서 치료를 못 받아 사망한 환자가 2017년 이후 3750명 이상이라고 집계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전면 철회를 주장하며 병원을 떠났다.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도 박 회장은 7대 요구조건을 전달하며 그중 1번을 의대 증원 철회로 내세웠다. 조만간 진행될 의료계 합동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다면 국민 생명을 담보로 밥그릇 지키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의료계는 1000명이든, 1500명이든 통일된 증원 방안을 내놔야 한다. 그래야 내년도 대학 신입생 모집 요강을 확정하는 등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의협에서 강경론과 대화론이 맞서는 등 내분으로 단일안을 내지 못한다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다. 차기 의협 회장이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비대위원장을 맡겠다는 것도 과한 요구다. 이제는 의료계가 성의를 보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