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의 그들이 작곡한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버릴 게 하나도 없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섭다. 말을 걸려고 하면 손에 땀이 주르륵 난다. 남들 앞에 서면 나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기분이 들어 불안하다. 친구도 사귀기 어렵다.

라이선스 초연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속 주인공 에반이 학교에 갈 때마다 견뎌야 하는 두려움이다. 병명은 사회불안장애. 언뜻 들으면 모든 사람이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2021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공식적인 유병률은 1%지만 실제로는 10% 사람들이 이 병을 한 번 이상 앓는다고 추정하는 이유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수줍은 성격이라고 넘기기 쉽지만 심각해질 경우 공황발작, 우울증, 약물 남용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병이다.

'디어 에반 핸슨'은 고등학생 에반이 불안장애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그는 심리치료를 위해 자신에게 편지를 쓰라는 과제를 받는다. 이 편지는 의도치 않게 동창 코너 머피의 손에 들어간다. 마약 문제와 성격 장애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코너는 며칠 뒤 자살한다.

'디어 에반 핸슨 (친애하는 에반 핸슨에게)'으로 시작하는 그 편지는 얼떨결에 코너가 에반에게 쓴 유서로 오해받는다. 유족들을 실망하게 하기 싫었던 에반은 둘이 절실한 친구 사이였다고 둘러댄다. '자살한 학생의 비밀 친구'라는 칭호를 얻은 에반은 친구들과 코너 가족의 관심과 애정 세례를 받기 시작한다. 달라진 자기 모습을 즐기는 마음과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단순한 줄거리지만 ‘거짓말’이라는 전제가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따라다니면서 강하게 몰입하게 한다.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위로 건네는 메시지도 새롭지는 않지만, 장애를 앓는 인물의 속내를 담백하게 그려내 진솔하게 전해진다. 동시에 SNS 문화와 사람의 죽음을 각자 입맛에 맞춰 재단하는 풍조에 대한 비판까지 담겼다. 위로와 풍자를 함께 담아낸 재치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라라랜드의 그들이 작곡한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버릴 게 하나도 없다
아름다운 음악이 압도적인 강점이다.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의 음악을 맡은 작사·작곡 듀오 ‘파섹 앤 폴’이 만든 청량하고 매력적인 선율이 작품 전체를 빈틈없이 채운다. 그래미 어워즈 최고의 뮤지컬 앨범상을 받은 작품답게 15개의 넘버 중 힘이 빠지는 곡이 없다. ‘Waving Through a Window’와 ‘For Forever'은 에반의 순수함과 아픔이 느껴지는 섬세한 멜로디가 관객의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린다. ‘You Will be Found’의 웅장하고 희망 넘치는 합창이 가사에 담긴 위로의 메시지를 햇살처럼 객석으로 내리쬔다. 에반 역 맡은 박강현의 목소리의 미성도 여리고 불안한 에반의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세련된 연출까지 더해져 음악과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깔끔하게 펼쳐진다. LED 화면을 활용한 학교, 집, 정원 등 배경을 생동감 있게 채운다. SNS 화면과 친구들과의 대화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 웃음을 끌어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커다란 나무를 무대에 세우면서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작중 사진으로만 등장하던 과수원의 나무 아래서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읽으면서 실제로 자신을 마주하고 아픔을 극복했음이 느껴진다.

재치 있는 스토리, 아름다운 음악, 군더더기 없는 연출까지 3박자가 맞아떨어진 수작. 토니어워즈 6관왕, 그래미 어워즈 최고의 뮤지컬 앨범상 수상이 고개가 끄덕여진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싶은 관객, 편안하게 재밌는 작품을 즐기고 싶은 관객 모두에게 추천한다. 공연은 충무아트센터에서 6월 23일까지.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