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용산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들이 오렌지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용산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들이 오렌지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진 이마트가 ‘초저가 식료품 전문 매장’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초저가 공산품과 가공식품 중심의 노브랜드와 구분되는 별도의 초저가 신선식품 매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고물가에 신선식품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쿠팡·알리 등 e커머스 공세에 맞서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채양 이마트 대표는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연내 최소 5개 이상의 출점 대상지를 확보하고 새로운 형태의 ‘그로서리 전문 하드 디스카운트 스토어(HDS)’로 신규 출점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HDS는 매장 운영비용과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하고 상품 대량 소싱(조달)을 통해 가격을 크게 낮춘 매장을 말한다. 초저가 식료품을 앞세워 현재 전 세계 31개국에서 1만2200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리들(Lidl)이 대표적인 HDS다.

이마트가 추진하는 새로운 형태의 HDS는 ‘신선식품판 노브랜드’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이마트의 매입역량을 활용해 국내외에서 신선식품을 대량 조달한 뒤 무인계산대 등을 통해 인건비를 최소화하면 기존 매장보다 더 싼 가격에 팔 수 있다는 복안이다. 알리·테무 등 중국 업체를 중심으로 한 e커머스의 초저가 공세에도 여전히 신선식품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하는 걸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만큼 초저가 신선식품을 앞세우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이 지난해 5월 인천 동춘동 이마트 연수점을 찾아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최혁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이 지난해 5월 인천 동춘동 이마트 연수점을 찾아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최혁 기자
HDS는 이마트의 기존 출점 전략과는 약간 벗어나있다. 이마트는 작년부터 대대적으로 인천 연수점과 경기 고양시 킨텍스점 등 기존 점포를 리뉴얼하며 체험형 콘텐츠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집객 효과가 큰 테넌트(임대) 매장 비중을 늘리고 직영 매장에도 즉석 조리식 코너와 ‘참치 해체쇼’ 등 각종 볼거리를 늘렸다. 반면 HDS는 오로지 가격에 초점을 맞춘 매장이다. 결국 많은 인력을 수반하는 체험형 요소를 과감히 줄여 인건비를 아끼고 대량 소싱·대량 판매를 통해 초저가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크게 개선된 노브랜드의 실적은 식료품 HDS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마트의 지난해 별도기준 영업이익은 1880억원으로 전년 대비 27.3% 줄었다. 그런데 노브랜드와 일렉트로마트 등 전문점 사업부만 떼어놓고 보면 영업이익은 오히려 141.7% 늘었다. 고물가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몰린 까닭이다. 여기에 신선식품 물가가 유독 많이 올랐다는 점도 한몫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농축수산물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1.7% 올라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률(3.1%)을 크게 웃돌았다.

이마트의 HDS 성공 여부에 따라 유통업계 판도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형태의 매장을 열겠다는 건 기존 매장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인력 배치나 매장 인테리어 등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라며 “성공할 경우 오프라인 업체들도 앞다퉈 벤치마킹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