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빠진 할머니 살인 청부업자에게 지키고 싶은 게 생겼다…뮤지컬 ‘파과’
파과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흠집이 난 과일이라는 의미의 파과(破果)와 여자 나이 16세를 일컫는 파과(破瓜)다. 참외 과(瓜)를 사용해 청소년기 여성이 초경을 시작하는 모습을 참외를 부순다는 말로 비유한 표현이다.

뮤지컬 ‘파과’에서는 늙어버린 여자 살인청부업자를 상징한다. 구병모가 2013년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 속 주인공 '조각'은 전문 킬러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미처 어른이 되기 전부터 살인 청부 세계에 발을 들인다. 파과 시절부터 살인에 재능을 발견한 그는 전설적인 킬러로 이름을 날린다.

작품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시점을 이야기한다. 조각은 이제 몸도 늙고 실력도 녹슬어버린 퇴물에 불과하다. 평생을 살인자로 살아와 가족도, 친구도 없다. 생명에 정을 붙이지 말라는 어릴 적 멘토의 조언을 따른 결과다.

그런 조각을 찾는 애타게 찾는 유일한 사람은 ‘투우’다. 투우는 20년 조각이 살해한 남자의 아들이다. 아버지를 죽이는 살인자를 본 투우는 복수심과 동경심이 뒤엉킨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조각에게 손수 아름다운 죽음을 선사하겠다는 뒤틀린 욕망을 품은 그는 직접 살인 청부업자가 된다.

조각을 만난 투우는 실망한다. 평생 동경해왔던 강하고 차가운 살인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늙고 마음 여린 할머니만이 남아있다. 투우는 조각의 젊은 시절 무자비한 모습을 다시 끌어내기 위해 조각이 사모하는 의사의 딸을 납치한다. 치열한 결투 끝에 투우는 조각을 죽일 기회를 잡지만 망설이고, 그 틈을 타 조각은 투우의 배에 칼을 찔러넣는다.
늙어빠진 할머니 살인 청부업자에게 지키고 싶은 게 생겼다…뮤지컬 ‘파과’
60대 노인 여성을 킬러를 그린 서사가 공감을 이끌어낸다. 표면적으로는 킬러의 이야기를 그리는 액션 누아르 장르지만 노년의 주인공을 통해 삶에 대한 후회와 그리움과 같은 보편적인 감정을 이야기한다. 작품은 복숭아를 활용한 비유로 홀로 남겨진 노인의 처지를 그린다. 조각이 강아지에게 주기 위해 챙겨둔 복숭아는 썩어버리고 강아지는 죽는다. 조각이 사모하는 젊은 의사의 가족은 싱싱한 복숭아를 팔지만 노인이 돼버린 그는 그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의 향기와 생기를 잃고 늙어 사랑받지 못하는 조각의 삶이 썩어 문드러진 복숭아에 담겼다.

등장인물들이 하는 행동에 동기가 되는 심리 묘사가 아쉽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를 향한 동경심과 복수심, 갈 곳 없는 자신을 거두어 준 남자를 향해 애정과 원망, 젊은 의사를 보며 느끼는 노년의 설렘 등 독특하고 미묘한 감정이 플롯을 끌고 나간다. 이러한 섬세하고 복잡한 감정 변화를 내레이션을 통해 직접 설명해 다소 밋밋하고 몰입도를 높이지 못했다.
늙어빠진 할머니 살인 청부업자에게 지키고 싶은 게 생겼다…뮤지컬 ‘파과’
섬세함보다는 과감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공연에서 흔히 시도하지 못한 누아르 장르를 화려한 액션 연기로 무대에 선보인다. 킬러들의 결투 장면에서 배우들이 특공 무술과 격투기 기술이 작품 내내 등장한다. 바닥에 뒹굴고 어깨에 올라타 제압하는 배우들의 몸짓이 마치 군무를 보는 듯하다. 깜빡이는 조명으로 동작을 잘게 나누고 효과음을 사용해 무대 위에서 액션을 최대한 역동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고민도 엿보인다.

창작 뮤지컬의 과감한 도전이 인상적이다. 무대 예술에서 보기 드문 묵직한 액션이 돋보인다. 등장인물들의 심리까지 섬세하게 그린다면 더 완성도 높은 작품로 거듭날 수 있겠다. 공연은 5월 2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