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7일까지 '순간 속의 영원' 주제로 개최…"작곡가 故 외트뵈시 추모"
3차원 영상 활용한 '스레드'·김일구 명창 판소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
진은숙 "통영국제음악제 유럽과는 다른 시각으로 나아가야"
"우리는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과는 위치가 다르잖아요.

우리의 미래는 유럽의 미래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2022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를 이끄는 진은숙 예술감독은 29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 강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음악제의 방향성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이날부터 4월 7일까지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순간 속의 영원'(Eternity in Moments)을 주제로 열린다.

진 감독은 "지난 2년간 음악제에서 좋은 연주를 보며 '이 순간은 영원히 우리 마음에 남는다'는 걸 느꼈고, 그렇게 주제를 정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음악제에서는 이달 세상을 떠난 상주 작곡가인 헝가리의 고(故) 페테르 외트뵈시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의뢰한 '시크릿 키스'(작곡년도 2018)와 '오로라'(2019)를 포함해 총 5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당초 '시크릿 키스'와 '오로라'는 2020년 음악제에서 세계 초연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선보이게 됐다.

진 감독은 "음악제 기간 내내 지병으로 안타깝게 사망한 외트뵈시를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며 "개인적으로는 음악의 아버지 같은 분으로, 20여년 전에 제 작품의 초연을 해주셨고, 인간적으로도 따뜻한 정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2022년 음악제 구상을 위해 부다페스트 자택에서 저녁을 먹을 때 자기 부인에게 '통영에 가게 됐다'고 어린아이같이 자랑하시며 좋아하셨었다"며 "그때 '내가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진은숙 "통영국제음악제 유럽과는 다른 시각으로 나아가야"
상주 연주자로는 프랑스의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가 참여한다.

세계 정상급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클랑포룸 빈, 독일 고음악 전문 연주단체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홍콩 신포니에타, 밴쿠버 인터컬처럴 오케스트라 등이 공연하며, 헝가리 출신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 빈 필하모닉 수석 하피스트 아넬레인 레나르츠, 카운터테너 필리프 자루스키 등이 무대에 선다.

독특한 무대도 만날 수 있다.

세계 초연하는 작곡가 사이먼 제임스 필립스의 신작 '스레드'(THREAD)는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면 3차원 영상이 실시간 상호작용하는 공연이다.

음악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소리'와 배경음 또는 소음으로 표현되는 자연·환경의 소리를 대비시킨 작품이다.

클래식 음악제에서는 보기 드문 판소리 공연도 열린다.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김일구 명창이 박봉술제 '적벽가'를 주요 눈대목 중심 80분으로 구성해 공연을 펼친다.

또 피아니스트이자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의 상주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나래솔의 공연 및 강연이 열린다.

진 감독은 "짧은 기간이지만 가능한 다양한 것을 청중들에게 선보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점을 항상 보여주고 싶었다"며 "너무 여기(유럽 음악)에만 픽스하기(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좀 더 다른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음악 장르의 다양함도 있지만, 요즘은 모든 게 디지털화되고 있고 한국은 그런 방향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상상도 못 할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시각적이고 멀티 미디어적인 것들도 선보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진은숙 "통영국제음악제 유럽과는 다른 시각으로 나아가야"
진 감독은 음악제가 초연 작품 등 낯선 레퍼토리가 많다 보니 청중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대중성에만 포커스를 맞춰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말러 1번을 한다고 하면 공감하는 사람이 훨씬 많겠지만, 그렇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다"며 "뭐든 처음에는 인기가 있을 수 없고, 하다 보면 청중들이 따라오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즐기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걸 선보이는 게 우리의 의무"라며 "우리의 앞서나가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뒤따라오는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음악제에서는 젊은 한국 음악가들의 무대도 만나볼 수 있다.

지난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정규빈, 티보르 버르거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김서현이 듀오 공연을 하며, 통영국제음악재단이 'TIMF아카데미'를 통해 발굴한 작곡가 이한의 위촉곡 '우리 주크박스가 망가졌어요'도 세계 초연한다.

진 감독은 "음악제뿐만 아니라 아카데미를 통해 젊은 연주자를 육성하고, 젊은 작곡가에게 리허설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올해로 임기 5년 중 3년 차에 접어든 진 감독은 "(음악제의) 퀄리티는 저희가 최상이라고 생각한다"며 "페스티벌의 수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예산 문제 등 그 밑바닥을 마련해야 할 다져야 할 임무들이 남아있다"고 남아있는 과제를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