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죽었다며 장례치러달라고 안달… 인간의 뇌는 왜 이럴까 [서평]
로널드는 갑작스러운 뇌졸중을 겪은 후 물건의 사용법을 잃어버렸다. 포크, 숟가락, 칫솔, 손톱깎이, 드라이버가 무엇인지 알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식사 시에 칫솔을 주자 칫솔을 숟가락처럼 사용했다. 숟가락에 치약을 묻혀 이를 문질렀다. 문제는 개념실행증이었다. 환자가 도구 등의 사물을 활용해 임무를 완수하는 방법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갖지 못하는 증상이다.

실행증은 여러 가지 종류로 나타난다. 눈을 뜨는 데 필요한 근육은 정상이나 눈을 잘 못 뜨는 눈꺼풀실행증, 옷을 못 입는 착의실행증, 동작을 못 만들어내는 관념운동실행증 등이다. 이런 증상은 우리의 뇌가 고장 난 이후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신경과학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뇌가 오작동하는 다양하고 신기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현실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보여준다.

어떤 환자는 멀쩡히 살아 있는데도 자기가 죽었다며 장례를 치러달라고 하거나, 자기 몸이 부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코타르증후군이라 불리는 이 증상은 뇌의 논리성을 담당하는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발생한다.

또 다른 망상증인 카그라스증후군 환자는 가족을 보고 진짜 가족은 사라지고 가짜가 그 자리에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진짜 딸은 납치되었고 사기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일부 환자는 온 세계가 사기꾼으로 뒤덮였다고 생각한다.

뇌의 오작동이 새로운 능력을 발현시키는 일도 있다. 데릭은 수영장에서 크게 뇌진탕을 당한 후 새로운 재능이 생겨났다. 평생 피아노를 배워본 적이 없었지만, 갑자기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자 마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듯이 손가락이 건반 위를 춤췄다. 그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음과 화음들을 자연스럽게 쌓으며 곡을 하나 만들어냈다. 그는 얼떨결에 찾아온 재능을 열정적으로 선보이는 음악가가 됐다.

데릭이 보인 건 후천적서번트증후군이었다. 서번트증후군은 보통 음악, 미술, 달력 계산, 수학, 공학 등 한 가지에 집착하면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증상이다. 보통 선천적으로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데릭은 후천적으로 뇌 손상이나 질환을 겪은 뒤 이런 능력을 얻었다.

이밖에 13년 동안 자신을 고양이라고 믿고 살아온 데이비드, 절단을 향한 욕구로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다가 결국 손 전체를 잘라낸 칼, 17개의 자아와 함께 사는 캐런, 에펠탑을 너무 사랑해 에펠탑과 결혼하고 이름까지 바꾼 에리카, 오른손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레오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환자의 사례를 저자는 소개한다.

그는 이런 비정상적인 모습들을 연구하면서 우리는 다들 뇌 기능에 약간의 ‘이상’은 지니고 살지도 모른다고 전한다. 대부분은 이상한 사고 패턴을 숨기는 데 전문가가 되어 무슨 일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며, 오히려 행복하고 온전한 정신을 갖는 게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주문한다. 이러한 현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사회 전체의 정신 건강을 개선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