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체투자' 기관끼리 소송戰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투자금 3000억원을 모두 날린 미국 더드루 라스베이거스 리조트 건설 프로젝트의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벌인 법정 공방의 1심 결론이 이르면 올여름 나올 전망이다. 자금을 투자한 기관들에 증권사나 자산운용사가 어느 정도로 투자 위험을 설명해야 충분한지가 핵심 쟁점이다. 기관투자가들이 승소할 경우 투자금을 모집한 국내외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해외 대체투자 손실 책임을 요구하는 기관들의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촉각 곤두세우는 금융계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1부는 오는 6월 13일 엔지니어링공제조합, MG손해보험, 현대차증권 등이 미래에셋증권과 NH투자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의 마지막 변론을 진행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원고와 피고 측은 이날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각자의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재판부가 이날로 변론을 종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만큼 이르면 7~8월 판결이 나올 전망이다.

국내 기관들은 201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5성급 호텔과 카지노, 극장 등을 거느린 대형 복합리조트를 짓는 ‘더드루 라스베이거스’ 프로젝트에 총 3000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시행사인 위트코프가 2020년 5월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2021년 이들 기관의 투자금이 전액 손실 처리됐다. 당시 위트코프가 선순위 채권자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양도하면 빚을 갚을 의무를 피할 수 있는 DIL(deed in lieu: 부동산 소유권 양도 제도)을 택하면서 리조트 소유권이 선순위 투자자인 외국 기관들에 넘어갔다.

중순위 투자자였던 국내 기관들은 투자금을 회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에 기관들은 “DIL로 인한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 고지받지 못했다”며 투자상품을 판매한 증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고지받은 설명과 실제가 달랐기 때문에 계약은 무효며, 증권사들이 투자받은 금액은 모두 부당이득이므로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권사들은 “충분히 설명했다”고 맞서고 있다. 특히 전문가인 기관이 실사 등을 거쳐 투자 판단을 내렸으면서 투자를 권유한 쪽에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증권사들은 이들 기관과 별개로 “부당이득금 158억원을 달라”며 소송을 건 세방전지를 상대로는 최근 1심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부동산이 아닌 지분에 담보를 설정하는 상품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투자자를 기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설명자료나 검토보고서에 DIL 관련 내용이 적혀 있지 않지만 DIL이 자금 회수 방법의 하나라는 점은 투자 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판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해외투자 줄줄이 손실…소송 잇따를 듯

금융투자업계에선 이 소송의 결과가 향후 기관이 손실 책임을 요구한 해외 대체투자 소송의 방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준금리가 0~1%대였던 2019~2021년 적극적으로 해외 대체투자에 나섰다가 손실을 본 기관들이 비슷한 취지의 소송에 뛰어들 수 있어서다. 기관이 승소하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기관을 상대로도 개인에 버금갈 정도로 상세하게 투자 위험을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당장 메리츠증권과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영향을 받을 곳으로 꼽힌다. 두 회사는 미국 가스복합화력발전소 투자 손실 사태로 롯데손해보험과 KDB생명, 교원그룹 등으로부터 줄줄이 소송을 당한 상태다. 이들 기관은 해당 발전소에 투자하는 2000억원 규모 펀드에 수백억원씩 넣었다가 2021년 발전소 운영회사가 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전액 손실을 봤다.

한 대형 로펌 금융담당 변호사는 “손실 사례가 잇따르는 상황인 만큼 기관들이 이긴다면 증권사·자산운용사의 투자자 모집이 이전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로 패소할 경우엔 기관들은 더 정밀한 실사 등을 통해 투자 대상을 분석해야 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