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美' TPC소그래스…골퍼들의 버킷리스트 [손은정의 골프인사이드]
지난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린 TPC소그래스는 가혹하면서도 아름다운 코스로 유명하다. 이 골프장의 시그니처홀인 17번홀이 대표적이다. 지난 20년간 대회 기간에만 990여 개 골프볼을 삼킨 잔인한 홀이지만 설계자 피트 다이의 시그니처인 철도 침목과 워터해저드가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은 꼭 한 번 저 홀을 경험해보고 싶은 도전 욕구를 자극한다.

‘좋은 골프장’의 기준은 골퍼마다 다르다. 난도가 높거나 조경이 인상적인 코스가 좋은 점수를 받는다. 설계자의 이름값도 큰 요소다. TPC소그래스가 골퍼들의 버킷리스트로 꼽히는 것도 그래서다. 골프장의 코스 디자인은 시기별로 세 번의 변화를 겪었다. 19세기 영국 바닷가에서 생기기 시작한 링크스 코스는 골프 코스의 시초다. 파도와 바람에 의해 땅에는 굴곡이 생겼다. 동물의 배설물 속 씨앗은 잔디밭을 만들었고 동물이 파헤친 자리는 벙커가 됐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의 가치는 심미성보다 골프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데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1929년 미국 경제대공황 직전까지 링크스 지역이 아닌 곳에 링크스 코스의 특징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파인밸리와 페블비치, 메리온 등이 이때 건설됐다.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골프 관련 기술도 코스 변화를 이끌었다. 골프공 대량 생산이 시작되면서 이전에 비해 비거리가 20~40야드 늘어났다. 스틸 샤프트가 등장하고 샌드웨지가 개발됐다. 코스는 길어지고 어려워져야 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무기 대신 중장비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이때 등장한 불도저로 골프 코스는 지형의 한계를 넘어섰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설계자가 로버트 트렌트 존스(RTJ)다. RTJ는 1951년 US오픈에 맞춰 오클랜드 힐을 재설계하고 헤이즐틴내셔널과 같은 7000야드 이상의 골프장을 설계했다. 1980년대 건설 붐과 함께 다이의 TPC소그래스, 잭 니클라우스의 캐슬파인 등 더 길고 독창적인 코스가 나왔다.

어려울수록 좋은 코스일까.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GC의 설계가 앨리스터 매켄지는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성취감과 희열을 주고, 사실은 겉보기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하는 것, 그게 골프의 재미”라고 강조했다. 골퍼를 골탕 먹이려고 억지스럽게 어렵게 만든 코스보다 보통 수준의 골퍼를 자극해 자신감을 키워주는 코스가 좋은 코스라는 얘기다.

골프 역사가 짧은 한국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설계 이론이 접목된 골프장이 생겨났다. 1993년 개장한 우정힐스가 대표적으로, 다이의 아들 페리 오 다이가 설계했다. 골프에서도 압축적인 성장을 이룬 한국에서 아마추어 골퍼에게 엉망으로 느껴질 코스는 거의 없다. 설계자의 명성보다 잔디 상태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손은정 골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