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투자 세액공제+α' 머물러…"기관총 싸움서 M-16 소총 들어서야"
산업부, 주요국 보조금 실태 긴급조사…"검토할 시기 됐다"
[반도체 머니전쟁] ② 흔들리는 반도체지형에 정부 '지원 강화' 고심
주요 국가들이 대규모 보조금을 앞세워 첨단 반도체 기업 유치 및 육성에 뛰어든 가운데 '반도체 강국' 지위를 강화하려는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 보조금 없이 투자 세액공제를 중심의 반도체 투자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다만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대규모 자금력을 앞세워 글로벌 반도체 산업 지형을 흔들고 있는 만큼 정부 내에서도 반도체 투자 보조금 도입을 신중하게 검토해 볼 수 있다는 기류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재정 확보의 어려움, 특정 기업 지원을 둘러싼 '특혜 논란' 가능성 등을 감안해 관련 논의를 조심스럽게 이어가면서 필요시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 속에 관련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24일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반도체 투자 보조금 제도 도입 문제를 놓고 세계 각국의 최신 정책을 평가하고, 업계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신중히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산업부는 최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해외 무역관들을 가동해 미국, 일본, 대만, 네덜란드, 독일 등 세계 주요 반도체 선진국의 최신 보조금 동향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동향은 과거와 비교해 투자 보조금 정책에 관한 정부의 태도가 한층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우리 기업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제도나 지원을 최대한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도 "세액공제는 이익이 난 뒤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고, 보조금은 투자 초창기부터 받는 것이므로 기업 입장에는 보조금이 체감 지원 효과가 두세배로 크다"며 "과거 우리나라가 보조금에 엄격했지만, 각국이 첨단 산업 지원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적극 검토할 시기는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머니전쟁] ② 흔들리는 반도체지형에 정부 '지원 강화' 고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업계는 2047년까지 경기 남부 일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에만 622조원을 투자하기로 하는 등 글로벌 경쟁 격화에 대비해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삼성전자만 622조원 가운데 500조원의 투자를 단행한다.

올해만 60조원 규모의 투자를 국내에서 집행할 반도체 기업들은 투자 보조금 제도 도입을 희망한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등 반도체 기업인들은 지난달 26일 안덕근 산업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투자 보조금 신설을 건의하기도 했다.

현재 정부도 강도 높은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는 현재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 확보 경쟁이 민관이 가세한 각국 클러스터 간 대항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정책 지원 강도를 한층 높이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K칩스법'이라고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통과돼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기업이 설비 투자를 했을 때 세액공제 비율을 대기업 기준 기존 8%에서 15%로 높였다.

[반도체 머니전쟁] ② 흔들리는 반도체지형에 정부 '지원 강화' 고심
올해까지는 한시적으로 대기업 기준 10%의 추가공제를 얻어 최대 25%까지 투자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데, 정부는 일몰 기한을 추가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밖에도 정부는 반도체 분야 정부 지원 예산을 1조3천억원으로 작년의 2배 이상으로 늘리는 등 ▲ 인프라·투자 환경 ▲ 생태계 ▲ 초격차 기술 ▲ 인재를 4대 중점 과제로 정해 반도체 기업을 직·간접적으로 지원 중이다.

안 장관은 앞선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서 "현재 조성 중인 반도체 산업단지들의 사업 기간 단축을 위해 관련 인허가를 신속히 추진하고, 반도체 기업의 투자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내주 반도체 등 첨단산업 추가 투자 인센티브 확대 방안을 담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종합 지원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다만 여기에 대규모 반도체 투자 보조금 지급 방안이 전격 발표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글로벌 '보조금 전쟁' 속에서 정부가 지원 정책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에 핵심 반도체 생산 설비 등을 갖고 있지 않으면 장기 경쟁력 유지가 어렵다"며 "(보조금이) 다소 특혜 시비 논란이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가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잘 설득하고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전폭적 지원을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다른 나라는 기관총을 나눠주는데 우리는 옛날 M-16 소총을 주고 '나가서 붙어보라'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며 "다른 나라보다 더 과하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세액공제 강화 등 여러 직·간접적 지원을 통해 한국의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줘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