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반도체 시장의 거대한 바다와 같다. 세계 시장을 지탱할 만큼 큰 시장을 갖고 있으니까.”지난 20일 중국 상하이 뉴인터내셔널 엑스포센터. 이날부터 22일까지 열린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 차이나 2024’ 무대에 오른 진룽자오 나우라테크놀로지(북방화창) 대표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중국은 지난해 세계 반도체 장비의 4분의 1을 사들였다”며 “인구, 기술, 인력 등 어떤 수치로 봐도 중국은 거대하다”고 했다.나우라는 ‘중국 반도체 자립의 상징’으로 꼽히는 중국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다. 미국의 중국 제재 이후 오히려 실적이 껑충 뛰었다. 지난해 1~3분기 순이익은 52억7513만위안(약 9745억원)으로 2022년 한 해 순이익(23억5272위안)을 두 배 이상 넘어섰다. 나우라의 기술력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그 덕분에 이날 나우라 부스는 신제품 등을 둘러보려는 인파로 하루종일 북적였다.몇 년 새 몰라보게 높아진 중국의 실력을 보여준 업체는 나우라뿐만 아니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1100여 개 기업 중 상당수가 나우라 같은 중국 대표 반도체 기업이었다. 실리콘카바이드(SiC), 갈륨나이트라이드(GaN) 등 전력 반도체를 부스에 내건 웨이퍼 생산업체 중환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전기차에 필수로 들어가는 전력반도체는 기술력이 높아야 만들 수 있는 반도체로 통한다. 중환반도체 관계자는 “전력반도체 기술은 한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며 “전기차용 반도체 자립은 이미 이뤘다”고 말했다.중국 식각장비 시장을 60~75%가량 점유한 중국 2위 반도체 장비업체 AMEC도 ‘중국 반도체 굴기’를 보여주는 기업 중 하나다. 2022년 말에는 제품 종류별로 0~20%였던 점유율을 순식간에 끌어올렸다. 회사 관계자는 “AMEC 덕분에 중국은 반도체 3대 공정 중 하나인 식각을 완전히 국산화했다”며 “중국 반도체 기업은 물론 TSMC도 AMEC 장비를 쓴다”고 했다.중국 반도체의 급성장 배경에는 정부가 주도한 ‘중국산 우선 이용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화웨이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테크기업은 자사 제품에 YMTC, SMIC 등 중국 반도체를 장착하고, YMTC와 SMIC는 반도체를 생산할 때 나우라, AMEC 등 중국산 장비를 사용하는 식이다. 중국 화타이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이 구매한 장비의 47.25%는 중국산이었다.미국 제재의 핵심인 첨단 노광장비에 대한 국산화 작업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자체 기술로 28㎚(나노미터: 1㎚=10억분의 1m) 노광장비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상하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MEE)가 대표적이다.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이제 한국 진출을 노릴 정도로 힘이 세졌다. 중환반도체는 최근 경기 광명시에 한국 사무소를 세우고 고객사를 찾고 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매력을 느낀 한국 업체가 많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미 한국에 진출해 대형 고객사를 확보한 AMEC도 고객사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전문가들은 중국의 ‘반도체 공습’이 조만간 현실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반도체 장비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럴드 인 AMEC 회장은 최근 “중국이 수입하는 반도체 장비의 80%를 연말까지 중국산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사상 최대인 270억달러(약 36조원) 규모의 반도체 자립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상하이=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방송통신위원회가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이동통신 3사와 제조사 임원을 소집해 가계통신비 인하 대책을 나눴다. 당초 예상대로 전환지원금 협조 요청 외에도 공시지원금과 중저가 요금제, 중저가 단말기 출시 등이 논의됐다.이날 간담회에는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해 유영상 SK텔레콤 대표, 김영섭 KT 대표,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와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 안철현 애플코리아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김 위원장은 "통신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가 매우 크고 물가 상승과 고금리 등으로 민생 안정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최근 도입한 전환지원금을 상향할 것을 요청했다.정부는 지난 16일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령을 개정해 전환지원금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통3사는 최대 50만원으로 상한인 전환지원금을 요금제와 기종에 따라 3만~13만원 선으로 책정했다.방통위는 지난 21일 현장 방문을 통해 상한선보다 낮게 책정된 전환지원금에 대한 소비자와 판매자의 의견을 청취한 뒤 이러한 요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통3사가 전환지원금을 상향할지 여부에 대해선 미지수다. 같은 날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는 주주총회에서 기업 입장에서 상당한 재무적인 부담이 있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중저가 요금제 도입 방안도 논의됐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내놓은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에서 올해 1분기 내 3만원대 5G 요금제 출시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KT만 5G 3만원대 요금제를 내놓은 상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출시 시기와 데이터 제공량을 놓고 계속 고민하고 협의하는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제조사 대상으로는 중저가 단말기 출시 확대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통계청이 조사한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통신 장비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9% 증가했다. 4분기 들어 17.6% 감소했으나 이는 통신 장빗값 하락의 영향이 아닌 고금리 고물가 여파에 소비 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플래그십 단말기 평균 가격은 155만957원으로 전년 대비 133만3500원과 비교해 21만원 넘게 상승했다. 저가형 단말기는 55만 904원으로 약 2만원가량 상승했다. 플래그십 모델 중 삼성과 애플의 단말기는 전체의 84.8%에 달한다.지난 17일 삼성전자는 가계통신비 절감 조치를 일환으로 중저가폰인 '갤럭시 A15 이동통신(LTE)'(31만9000원) 를 출시했다. 삼성은 상반기 내 출시를 목표로 50만~60만원 대의 중저가 모델을 추가로 선보일 예정이다.이와 함께 불법 스팸을 줄이기 위한 '전송자격인증제', 삼성전자와 이통 3사가 개발한 '스팸 필터링 서비스' 등 통신서비스 이용자 편익 증진을 위한 조치들도 논의됐다.방통위와 사업자들은 이번 조치들을 통해 불법 스팸 차단 기술을 구간별로 고도화해 피싱 등의 피해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통3사와 단말기 제조사 대표들은 "통신서비스가 국민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정부의 가계 통신비 절감 및 이용자 보호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앞으로도 서비스 혁신과 성장 못지않게 오늘 논의된 이용자 보호 조치들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임신 상태로 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며 유해환경에 노출됐던 근로자들의 자녀에게 발생한 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태아 산재'가 인정받은 것은 간호사에 직종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22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자녀의 선천성 질환에 대해 산재를 신청한 반도체 공장 근로자 3명에 대해 이날 산재 승인이 이뤄졌다. 공단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 결과 "자녀의 신청 상병과 근로자가 수행했던 업무와의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이들 근로자 3명은 임신 중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오퍼레이터로 근무했다. A씨는 1995년부터 2004년 9월 자녀 출산 전까지 약 9년간 근무했다. 자녀는 산전 초음파에서 방광요관역류, 콩팥무발생증이 확인됐다. 자녀가 10살이 됐을 때는 신장질환인 lgA 신증 진단을 받았다.B씨는 1991년부터 약 7년 7개월간 근무하고 1998년 6월 임신 후 8월에 퇴사했다. 이듬해 태어난 자녀는 선천성 거대결장증을 진단받았다. 임신 7개월까지 근무했던 C씨의 자녀는 2008년 출생 후 선천성 식도폐쇄증과 무신장증 등을 진단받고,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식도문합술 등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A, B, C씨는 2021년에 나란히 산재 신청을 해 3년 만에 산재로 인정받았다. 역학조사를 진행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역학조사평가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심의 보고서에서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았다.'태아 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태아산재보상법)이 지난해부터 시행된 후 공단이 태아 산재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12월 인공신장실에서 투석액 혼합 업무를 하던 간호사의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뇌질환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다.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