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환자만 피해자"…의대 교수들까지 사직 예고에 불안 가중
"정부·의료계, 환자 심정 헤아려 조속히 사태 해결에 나서야"

[※ 편집자 주 = 지난달 19일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시작된 의료대란이 한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전공의들과 정부의 갈등이 극한 대결로 치달으면서 좀처럼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상황입니다.

연합뉴스는 환자 곁을 떠나지 않은 의사들과, 떠난 의사들, 의사 업무 일부를 떠맡게 된 간호사들, 비상상황에서 응급환자 이송을 위해 분투하는 구급대원들 그리고 의료대란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환자들의 목소리를 각각 전하는 5꼭지의 기획기사를 송고합니다.

의료대란의 현장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갈등의 골을 메울 작은 단초라도 제공하자는 취지입니다.

]
[의료대란 한달] "'시한폭탄' 이고 사는 불안" 고통받는 환자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머리 위에 이고 산다고 생각하니 너무 불안해 제대로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
뇌동맥류를 앓고 있는 김모(53)씨는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발생하기 닷새 전인 지난달 14일 대전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이 시급하다는 전문의 진단을 받았다.

김씨가 앓는 뇌동맥류는 뇌동맥 혈관 일부가 약해지고 결손이 생겨 해당 부분이 꽈리처럼 부풀어 있는 뇌혈관질환이다.

김씨의 경우 크기가 크고, 교통동맥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 하루빨리 수술해야 하지만 수술은커녕 수술 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수술을 집도할 마취과, 신경외과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한 달 내내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문의했지만, 김씨를 받아주는 충남지역 내 3차 병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계속 통원해 경과를 꾸준히 지켜봐야 하는 질환이라 집 근처 병원에서 수술받고 싶었다"며 "전화로는 예약 응대가 어렵다고 해 병원들을 찾아다니며 수소문했는데도 결국 수술을 못 했다"고 하소연했다.

[의료대란 한달] "'시한폭탄' 이고 사는 불안" 고통받는 환자들
결국 사돈에 팔촌까지 온갖 인맥을 동원한 끝에 경기도 용인시의 한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생계를 위해 주간 요양보호사와 마트 일을 하는데, 수술이 지연됐던 탓에 혹여나 병세가 악화할까 봐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고 있다.

5년간 고혈압 약을 복용 중이라 더 불안한 그는 최근에는 큰 일교차를 보이는 날씨가 무서워 외출 시 모자를 두겹씩 쓰고 다닌다.

김씨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까지 내리면서 정작 수술은 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하루라도 일찍 수술받고 싶다"고 토로했다.

[의료대란 한달] "'시한폭탄' 이고 사는 불안" 고통받는 환자들
지난달 19일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전국 곳곳에 있는 환자들이 의료 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한 달째 겪고 있다.

특히 지방에 사는 중증 환자들은 언제 이 사태가 끝날지 모르는 불안감 속 무기한 연기되는 수술과 진료를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는 와중에 병원을 지탱해온 의대 교수들마저 오는 25일부터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의하자 환자들과 가족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유방암 초기 환자 보호자인 박모(61)씨는 "의료진의 힘으로 치료해야 하는데 (의대 교수 사직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은 환자만 불안하고, 환자만 피해자가 된다"고 불안함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 "바라는 건 하루빨리 정상화가 돼서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김모(42)씨의 경우 폐암 수술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터졌다.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수개월간 삼성서울병원에 오가며 간신히 잡은 수술 일정이었다.

[의료대란 한달] "'시한폭탄' 이고 사는 불안" 고통받는 환자들
다행히 두 달 전 검사에서 전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젊은 나이'가 가장 큰 위험 요인인 김씨로서는 잠 못 이루는 날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김씨를 진료해온 병원에서도 당장 이번 주 안에 사태가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이르면 내달 말에나 수술 일정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환자들 사이에서는 병원 수뇌부, 의사들과 인맥만 있다면 이 난리에도 빠르게 수술 날짜를 받아 간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돈다"며 "병원을 옮기고 새로운 의사를 만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의료대란 한달] "'시한폭탄' 이고 사는 불안" 고통받는 환자들
부산에 사는 이모(58)씨 역시 고질적인 관절염 치료를 위해 서울대병원에 정기 진료 다니던 중 이달 초 예약한 외래진료를 취소했다.

당초 예약했던 외래진료에서 담당 교수와 인공관절 전치환술 수술 일정을 잡기로 했으나 전공의 파업으로 수술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진료를 취소했다.

간단한 외래진료이지만 하루를 꼬박 할애해야 하는 이씨는 수술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외래진료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다시 수술 일정을 잡기 위해서는 또 진료를 새로 예약해야 하는데, 수개월 뒤에나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결국 수술 일정도 더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의료대란 한달] "'시한폭탄' 이고 사는 불안" 고통받는 환자들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현 사태는 직장 생활에도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A씨는 지난 7일 성남시 한 여성병원 부인암센터에서 자궁근종 수술을 받기로 예정돼있었는데, 지난 달 28일 병원으로부터 수술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수술 일정이 뒤로 미뤄진 탓에 병세가 악화할까 걱정되는 것은 물론, 당초 세웠던 계획이 틀어지면서 직장 생활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의료대란 한달] "'시한폭탄' 이고 사는 불안" 고통받는 환자들
수술 후 한 달간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수술 날짜에 맞춰 미리 소속 팀까지 변경했는데 돌연 일정이 바뀌어 불편이 크다는 것이다.

A씨는 "미리 병가도 신청하고 인사이동까지 마친 상황에서 수술 일주일 전 갑작스럽게 변동 사항이 생겨 너무 난처했다"며 "아직도 다음 수술 날짜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서 언제까지 새로운 팀에서 근무해야 할지, 어떤 업무를 맡아야 할지 등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의료대란 한달] "'시한폭탄' 이고 사는 불안" 고통받는 환자들
새생명과 만남에 설레야 할 '예비 엄마'들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대구 달서군에 사는 윤모(36)씨는 오는 18일 2차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앞두고 있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35세 이상 노산인 데다가 초산이 아닌 만큼 예정일보다 이른 출산을 하게 될 '응급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윤씨는 "수술 예정일보다 빨리 진통이 오는 응급 상황이 올까 봐 제일 불안하다"며 "병원 응급실에서 기존 환자가 아닌 이상 산모들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 주말이나 야간에도 진료를 보는 병원이 어딘지 확인해뒀다"고 말했다.

이어 "사태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는데 정부와 의료계가 환자들의 심정을 헤아려 얼른 사태 해결에 나섰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선형 이주형 김솔 정회성 박성제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