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를 표방하는 ‘큰손’들이 소비재 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최근 주춤하던 저PBR(주가순자산비율)주 장세가 증권·금융주를 중심으로 다시 살아나는 가운데 추격 매수보다는 ‘덜 오른 종목 찾기’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밸류업 수혜 보자"…큰손, 롯데칠성·이노션·한섬 쇼핑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VIP자산운용은 이달 들어 롯데칠성을 1% 이상 신규 매수해 지분을 6.67%로 늘렸다고 공시했다. VIP자산운용은 현대그린푸드 지분율도 9%에서 10.04%로 확대했다. 베어링자산운용은 현대홈쇼핑을 5.03% 신규 매수했다. 기존에 보유하던 한섬이노션 지분도 각각 1.53%, 1.01% 늘렸다. VIP자산운용과 베어링자산운용은 기업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곳에 투자하는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국내외 대표 운용사로 꼽힌다.

이들 운용사가 사들인 종목은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롯데칠성은 8.41% 떨어졌고 현대그린푸드와 이노션도 각각 2.86%, 3.39% 하락했다. 한섬과 현대홈쇼핑은 주가가 올랐지만 상승률이 각각 2.84%, 4.30%에 그쳤다. 금융주와 지주사들이 한 달 새 10% 이상 급등하며 본격적인 상승 랠리를 탄 것에 비하면 여전히 투자자로부터 소외됐다는 지적이다.

증권가는 소비재 종목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어 투자 매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롯데칠성은 PBR 0.87배 수준에서 거래 중이다. 현대그린푸드(0.61배) 현대홈쇼핑(0.28배) 한섬(0.35배) 이노션(0.95배)도 모두 PBR 1배 미만이다. PBR이 1배 미만이면 기업 가치가 자산 가치보다 낮다는 의미다.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저PBR업종 중에서도 금융 보험 등 특정 분야의 주가 상승이 두드러졌다”며 “주가가 소폭 상승하는 데 그치거나 오히려 하락한 저PBR 종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한투자증권은 비유동자산 비율이 높아 자산 효율화 관점에서 접근할 만한 업종으로 경기소비재, 커뮤니케이션, 산업재 등을 꼽았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이 미흡해서 주가가 오르지 못한 종목 가운데 중국 경기 회복 등의 모멘텀이 있을 때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분야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가치투자 운용사들은 소비재를 사들인 반면 최근 급등한 반도체 관련 종목은 매도해 차익 실현에 나섰다. 가치주 펀드를 운용하는 신영자산운용은 올해 초 사들인 테크윙 지분(5.02%→1.66%)을 매도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테크윙은 반도체 후공정 검사장비 업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율 개선을 위한 HBM 테스트용 큐브프로버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발맞춰 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것으로 예상되면서 올 들어서만 주가가 160% 이상 뛰었다.

이지효 기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