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없어 수십년 사실상 방치…한인회·참전협회 주도로 묘지 재건립
시 당국이 '영구 관리' 약속…묘비엔 '참전 기록 열람' QR코드
잊힐뻔한 룩셈부르크 6·25전사자 2인 묘지 영구 보존된다
20대 젊은 나이에 한국전쟁에서 전사했으나 영영 잊힐 뻔했던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2인의 묘지가 영구 보존된다.

룩셈부르크 한국전 참전협회(이하 참전협회)는 16일(현지시간) 현지에서 룩셈부르크 6·25 전사자인 로저 슈튀츠(1930.3.9∼1952.8.22)씨와 로버트 모레스(1926.3.9∼1952.9.26)씨의 묘지 재건립 기념행사를 열었다.

룩셈부르크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슈튀츠씨는 군 의무 복무를 마친 이듬해인 1950년 9월 꾸려진 룩셈부르크의 제1차 한국전쟁 분견대에 자원했다.

그는 임무가 끝날 무렵 1년 더 복무하기로 결정, 제2차 분견대에도 합류했다.

그러나 1952년 8월 22일 수류탄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사 당시 만 22세였다.

잊힐뻔한 룩셈부르크 6·25전사자 2인 묘지 영구 보존된다
참전 당시 24세였던 모레스씨도 슈튀츠씨와 마찬가지로 룩셈부르크 제1, 2차 분견대에 모두 자원했으나 1952년 9월 26일 중공군의 박격포 공격으로 부상당한 동료들을 구하려다 치명상을 입고 숨졌다.

두 사람은 한국전쟁 당시 100명(연인원 기준)을 파병했던 룩셈부르크에서 나온 두 명의 전사자다.

부산 유엔기념공원 추모명비에도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다만 이들이 어디서 전사했는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현지 기록에는 '촉코리'(Chokko-Ri)로 표기돼 있으나 존재하지 않는 지명으로, 당시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가 이른바 '임진강 S형 만곡부' 일대에 배치돼 있던 점을 고려하면 경기도 연천군의 어적산리∼적음리 인근으로 추정된다고 현지 군 소식통은 설명했다.

두 사람의 장례식은 전사 이듬해인 1953년 3월 룩셈부르크군 주관으로 엄수됐다.

이후 각각 고향 묘역에 안장됐지만, 둘 다 자녀가 없었기에 세월이 지나면서 관리해줄 사람이 없어 최근 수십 년간 묘지가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

룩셈부르크는 통상 안장된 지 대략 30년이 되면 묘지 임대 계약을 갱신해야 하지만, 이들의 경우 현재 생존한 친척이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잊힐뻔한 룩셈부르크 6·25전사자 2인 묘지 영구 보존된다
이에 참전협회와 한인회는 정전협정 70주년이던 지난해부터 묘지 재건립·보존을 추진했다.

비용은 현지 진출 한국 기업 및 개인 성금으로 마련했다.

박미희 한인회장은 "룩셈부르크인들도 매년 11월쯤 한국에서 성묘하듯 가족묘를 관리하는데, 두 분은 그럴 가족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룩셈부르크의 룩셈부르크시(市)에서 직접 영구적으로 보존·관리하기로 협약도 맺었다"며 "우리로선 오랜 숙제를 드디어 마친 셈"이라고 말했다.

새로 설치된 묘비에는 각각의 참전 기록 웹페이지로 연결되는 스마트폰용 QR코드도 부착됐다.

누구나 쉽게 참전 기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룩셈부르크를 담당하는 주벨기에 대사관 소속 무관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이날 기념행사에는 유리코 베키스 룩셈부르크 국방장관과 유정현 주벨기에 대사(룩셈부르크 대사 겸임)를 비롯해 룩셈부르크 시·군 관계자들과 현지 참전용사 유족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잊힐뻔한 룩셈부르크 6·25전사자 2인 묘지 영구 보존된다
고인들의 '벨룩스 대대' 전우인 벨기에 참전용사 자크 델쿠르(93)씨도 특별히 자리했다.

델쿠르씨는 "룩셈부르크 전우들을 이렇게 한 번 더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어 정말 감동적"이라며 "전쟁터에서 죽었든, 이후 세월이 지나 별세했건 간에 모든 참전용사를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 대사는 "한국이 오늘날 이룩한 발전은 참전용사들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룩셈부르크인들의 우정과 희생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며, 조만간 양국 주재 대사관이 신설되면 양자 관계가 한층 더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룩셈부르크는 한국전쟁 당시 100명(연인원 기준)의 전투 병력을 자원받아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 소속으로 파병했다.

절대 인원은 적지만, 룩셈부르크 인구가 20여만 명에 불과했기에 22개 참전국 중 인구 대비 최다 파병국으로 기록돼 있다.

잊힐뻔한 룩셈부르크 6·25전사자 2인 묘지 영구 보존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