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대면 진료 규제를 대폭 풀자 비대면 조제에 대한 현장 약국들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주요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제휴를 요청한 약국이 급격하게 늘었다. 업계에서는 비대면 진료 처방 문제가 일단락되면 ‘약 배송’ 이슈가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약국이 소비자에게 택배 등으로 약을 보내는 것은 불법이다.

○플랫폼 진입하는 약사들

비대면 진료 올라탄 약국 "의사 공백이 기회"
15일 업계에 따르면 닥터나우, 나만의닥터 등 지난달 주요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들어온 약국의 제휴 신청 건수가 크게 늘었다. 그동안 지역 약사회의 압박으로 코로나19 시기 플랫폼과 제휴한 약국들이 플랫폼에서 나간 것과는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이슬 닥터나우 정책이사는 “지난 2월 초부터 비대면 진료 전면 허용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지난달 제휴를 요청한 약국이 꾸준히 증가했다”며 “규제가 풀리면 관련 처방 건수가 늘어날 게 확연하기 때문에 이를 소화해보고 싶은 약국들의 수요가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집단행동 대응책으로 지난달 23일부터 비대면 진료 가능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이전에는 야간·휴일, 의료 취약지역 등 제한적 조건일 때만 초진 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모든 초진 환자가 제약 없이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늘어난 비대면 진료 수요를 약국들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약국에 대한 여론이 악화할 것이란 우려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재원 나만의닥터 대표는 “비대면 진료 약 처방을 반대하던 대한약사회 내부에서 비상 국면에 비대면 조제를 거부할 경우 약 배송까지 풀려버리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는 규제 완화 직후 회원 약국에 “비대면 진료 처방을 약국들이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면 국민들의 불만이 약국을 향하게 될 수 있다. 자칫하면 약 배송 허용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단체 문자를 보냈다. 당시 약사들 사이에선 지침이 바뀐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대한약사회는 피치 못하게 비대면 조제를 해야 할 때는 민간 플랫폼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구축한 처방 전달 시스템(PPDS)을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민간 플랫폼 종속을 막기 위한 목적이지만 현장 약사들 사이에선 PPDS에 불만이 크다. 민간 플랫폼에 비해 이용이 불편한 데다 처방전 매칭 비율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환자들 불편은 여전”

플랫폼과 손잡은 약사가 늘어나곤 있지만 전체 약사에선 아직 소수라 환자들 불편은 여전하다. 플랫폼과 제휴하지 않은 약국엔 환자가 직접 전화해 재고를 확인해야 한다. 환자들은 비대면 진료 후 집 근처 약국에 처방받은 약이 없어 ‘약국 뺑뺑이’를 하는 실정이다.

원격진료산업협의회 관계자는 “플랫폼 제휴 약국이 지금보다 더 많이 늘어나야 환자 불편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막혀 있는 약 배송 규제까지 모두 풀려야 비대면 진료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란 게 플랫폼들의 주장이다.

규제 완화 후 제휴 신청이 급증한 약국과 달리 병의원들의 플랫폼 제휴 추세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나만의닥터에 따르면 의원의 비대면 진료 제휴 요청은 월 50건가량으로 최근 석 달간 비슷했다. 정부가 전면적으로 의원급이 아닌 병원급의 비대면 진료까지 열었지만 플랫폼에 신규 진입한 병원급 제휴사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