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네덜란드 로테르담항 마스블락테 APM터미널. 북해를 마주 보고 선 거대한 크레인이 항만에 정박한 대형 화물선으로 팔을 뻗었다. 한 번에 40피트 컨테이너 두 개를 들어 올린 크레인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인 화물차(AGV) 위로 컨테이너를 내렸다. 어떤 차는 야적장으로, 또 다른 차는 트럭이나 더 작은 연안선을 향해 스스로 움직였다.
'스마트 항구' 로테르담港의 야심…"유럽 수소 허브 될 것"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로봇 크레인·화물차와 항구 곳곳에 우뚝 선 거대한 풍력터빈만 묵묵하게 돌고 있었다. 63빌딩(248m) 높이의 초대형 풍력터빈 한 기는 1만6000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마틴 반 오스턴 로테르담항만공사 홍보담당관은 “APM터미널은 100% 풍력 발전에서 생산된 전력으로 운영되는 탈탄소 항구”라며 “올해 말부터 로테르담항 내에서 그린수소 생산을 시작해 6년 후엔 유럽 전역에 수소를 운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항만 자동화의 첨병이던 로테르담항이 ‘탈탄소 에너지 항구’로 또 한 번 진화하고 있다. 유럽 최대 항구인 로테르담항은 반자동화 터미널(1993년)과 무인 자동화 터미널(2015년),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항만 시스템(2018년)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곳이다. 로테르담항은 향후 무인자율주행선 시대에 대비해 ‘디지털 트윈’을 구축 중이다.

로테르담항이 겨냥한 다음 목표는 ‘유럽 최대 그린수소 허브’다. 그린수소는 풍력·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한 수소다.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없는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형상 재생에너지 발전이 쉽고, 해상을 통해 대규모로 수소를 수입할 수 있는 로테르담은 그린수소 생산에 적합한 곳이다. 실핏줄 같은 하천과 육로,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 내륙으로 수소를 운송할 수 있는 인프라가 풍부하다는 것도 강점이다.

로테르담항은 마스블락테 부지 내에만 8곳의 수소 시설을 짓고 있다. 완공되면 연 2.5GW급 수전해 설비로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영국 셸·BP, 독일 티센크루프·RWE·유니퍼, 프랑스 에어리퀴드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앞다퉈 투자했다. 가장 먼저 뛰어든 셸은 축구장 800개와 맞먹는 부지에 10억유로를 들여 연 60만t 규모의 네덜란드 최초 그린수소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반 오스턴 담당관은 “2030년부터 이곳에서 독일과 벨기에의 산업단지까지 수소 파이프라인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로테르담항은 하역·운송업 같은 전통적인 항구 사업에서 탈피한 지 오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로테르담항이 터미널 운영을 통해 얻는 부가가치 비중은 17.3%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부가가치는 벙커링, 선박금융, 항만배후단지 건설·운영 사업 등에서 올린다. 이에 비해 부산항은 기본 터미널 운영 의존도가 60%에 달한다.

KMI 관계자는 “한국은 수출입 화물의 99.7%를 해상 운송에 의존할 만큼 해운·항만산업의 중요성이 크지만 아직 하역·운송업 외 서비스의 부가가치 창출력은 낮은 수준”이라며 “세계 주요 항구와 경쟁하려면 항만 연관 산업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로테르담=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