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대선 D-7, 푸틴 사실상 '차르 대관식'
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 곳곳엔 선거 일정을 알리고 투표를 독려하는 포스터가 나붙었다.

이 포스터만큼 자주 눈에 띄는 것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포스터다. 파란색 바탕에 러시아 국기가 그려져 있고 '러시아 푸틴 2024'라고 적혔다.

이번 러시아 대선은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치러진다. 이 기간 투표소는 매일 오전 8시부터 12시간 동안 운영된다.

올해 71세인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5선에 도전한다. 2000년, 2004년, 2012년,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한 그는 이번에도 당선되면 정권을 2030년까지 연장하게 된다.

총리직(2008∼2012년)을 포함해 24년간 러시아를 통치한 푸틴 대통령이 2030년까지 새 임기를 마치면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의 29년 집권 기간을 넘어서게 된다.

나아가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34년 재위) 이후 러시아 최장수 통치자가 된다.

푸틴 대통령은 2020년 개헌으로 2030년에 열리는 대선까지 출마할 수 있어 이론상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 연장이 가능하다. 이 경우 러시아제국 초대 황제 표트르 대제(43년 재위)만이 푸틴 대통령보다 오래 러시아를 통치한 인물이 된다.

이번에 당선된다면 '현대판 차르(황제)'라는 별명에 걸맞게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셈이다.

미국 CNN까지도 최근 "우리는 누가 승자가 될지 이미 알고 있다"고 보도하는 등 푸틴 대통령의 당선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대항마도 사실상 전무하다. 이번 대선 후보 4명 중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푸틴 대통령을 제외한 3명은 러시아 원내 정당 대표인데도 존재감이 크지 않아 구색맞추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야권 인사들도 출마에 도전했지만 후보 등록조차 못 했다.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혔던 알렉세이 나발니는 극단주의 혐의 등으로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지난달 16일 갑자기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 반대하는 보리스 나데즈딘은 원외 정당인 시민발의당 소속으로 대선에 도전, 10만명 이상의 지지 서명을 받아 주목받았으나 제출 서류에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후보 등록이 좌절됐다. 나데즈딘은 여러 차례 이의를 제기했지만 번번이 법원에 기각됐다.

반정부 성향 여성 변호사 예카테리나 둔초바 역시 지난해 12월 제출 서류에 100여가지 오류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선 후보 등록을 거부당했다.

당선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도 약간의 가능성까지 전면 차단한 셈이다.

이번 대선의 관건은 그의 당락이 아니라 득표율과 투표율이다.

러시아여론조사센터의 지난달 25일 조사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인의 신뢰도는 79.6%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이전인 2022년 2월 67.2%에서 크게 올랐다.

지난 3일 조사에서도 "선거일이 다음 주 일요일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에 75%가 푸틴 대통령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투표 결과 과반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3주 후 결선 투표를 치르는 제도가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2018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은 득표율 76.7%를 기록, 2위 공산당 후보 파벨 그루디닌(11.8%)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당선됐다.

3년 차에 접어든 특별군사작전과 나발니의 사망 역시 푸틴 대통령의 당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는 나름대로 견고히 버티고 있고 최근 우크라이나 에서 러시아군의 기세도 좋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은 국내외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75% 이상 득표율로 자신의 건재한 통치 기반을 과시하고자 한다. 지난해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은 이번 대선 '주요 후보'의 득표율 목표를 75% 이상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를 비롯한 나발니 지지자들이 "17일 정오 투표소에 나와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자"고 촉구하는 상황이 득표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나발나야는 투표소에서 푸틴이 아닌 다른 후보에 투표하거나 투표지에 '나발니' 이름을 적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투표율이 2018년의 67.5%보다 낮다면 푸틴 대통령이 그리는 '모두의 대통령' 이미지 구축과 특별군사작전 정당성 확보에 흠집이 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 작가 출신 정치분석가 압바스 갈리아모프는 AP 통신에 "이번 투표는 '푸틴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를 묻는 이분법적 문제가 됐다"면서 사실상 그와 특별군사작전을 지지하는지 묻는 '국민투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우크라이나 상황을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이 계속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대선 후 푸틴 대통령의 방북으로 북러 간 밀착이 심화하면 한반도 안보의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대선은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와 2022년 '새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4개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에서도 이뤄진다.

중앙선관위는 이번 대선에 18세 이상 러시아 시민은 누구나 투표할 수 있다며 '새 영토' 지역 포함 러시아 시민 약 1억1천230만명과 해외 거주 러시아인 190만명에게 선거권이 있다고 밝혔다.

자포리자의 특별군사작전 참가 군인과 주민, 극동 캄차카주 외딴 지역 주민 등은 지난달부터 사전투표를 했다. 모스크바 등 29개 지역은 러시아 대선에서 처음으로 온라인 원격 전자 투표도 도입했다.

대선에서 사흘간 투표가 이어지는 것도 최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조치가 투표의 공정성 관리에는 부정적일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시형기자 jsh1990@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