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 /사진=넷플릭스
송중기 /사진=넷플릭스
"제 개똥철학인데요, 요즘 시대가 유명한 사람이 나온다고 보고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송중기 나온 데 보자' 그런 건 아니죠. 책(시나리오)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편이에요. 책이 좋아서 봤는데 신인 감독 작품이더라고요."

송중기는 편식 없는 배우다. 그의 필모그래피가 이를 방증한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아스달 연대기', '빈센조', '재벌집 막내아들'과 영화 '늑대소년', '군함도', '화란' 등을 나열해보면 그의 도전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송중기는 "개인적인 욕망인데 드라마 할 때 못 하는 걸 영화에서 하는 편"이라며 " 배우로서 표현하고 싶은 게 '화란'이었고 그리고 '로기완'이었다"고 말했다.

송중기는 신작 '로기완'은 탈북 후 중국 연길에서 숨어 지내다 벨기에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로기완 역을 맡았다. 연출은 단편 '수학여행'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김희진 감독이 맡았다.

지난해 송중기 생애 첫 칸 레드카펫을 밟게 한 영화 '화란'도 김창훈 감독의 데뷔작이었다. 영화계에서 신인 감독을 지원사격 하거나 발굴하고 싶다는 의지였을까.

그는 "아니다. 저는 그런 깜냥이 되는 사람은 아니다"라며 "그건 송강호 형님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저 책이 좋은데 신인 감독이었거나 기성 감독일 뿐이었다"며 "조성희 감독도 '늑대소년' 할 때 둘 다 아기였다. 신인 감독이 사고 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로기완' /사진=넷플릭스
'로기완' /사진=넷플릭스
'화란'에서 지독한 현실을 사는 조직의 중간 보스 역을 맡은 후 '로기완'에선 삶의 끝에 선 이방인으로 또 한 번의 변신을 보여줬다. 고독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로 빛나는 눈빛은 보는 이를 서사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 작품은 송중기의 새로운 면모와 연기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지만 극중반부터 이어지는 로맨스 부분은 호불호가 갈렸다. 송중기가 7년 전 '로기완'을 거절했던 이유다.

"오래 전, 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나누다 그때 안 하고 한 게 '군함도'였을 거에요. 처음 보자마자 너무 하고 싶고, 이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고사한 이유는 바로 사랑 타령. '여기서 기완이 왜 사랑을 하죠?'였습니다. 엄마의 희생으로 벨기에까지 갔는데 나라면 죄책감에 허우적대다 못 나올 것 같아요. 극 중 '사치 아닌가요'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때 그런 마음이었어요. 하자고 해놓고 안 했어요. 제 실수죠. 공감이 안 되는 데 어떻게 해요. 도무지 안 되겠더라고요."

송중기는 수년이 지나 '로기완' 시나리오를 다시 보게 됐다. 그는 "이유는 모르겠는데 너무 공감되더라"라며 "예전엔 그 상황이 사치 아닌가 했는데 그게 너무 예뻐 보였다. 사람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제 생각이 바뀐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로기완'은 죄책감에 대한 영화"라며 "영화 후반부에 기완이 마리(최성은)에게 '내가 행복할 자격이 있는 놈이냐'라고 말하는 신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모든 걸 다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죄책감에 시달려도 어쨌든 사람 아니냐.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거다"고 답했다. 어쩌면 결혼 후 아들을 얻고 심경에 생긴 변화가 '로기완'을 다시 택한 이유일지 모른다.

기완은 송중기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처연하고, 최약체의 캐릭터가 아닐까. 그는 "새로워 보이고 싶다. 당연히 배우로서 성장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벨기에 정육 공장에서 기완과 함께 일하는 조선족 선주 역을 연기한 이상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이상희 배우와 하는 모든 신들에서 저는 새로운 걸 느꼈다. 전형적으로 연기한 것 같은데 많은 사람이 새롭게 봐주셨다고 들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로기완'을 풀어내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정서였다. 그는 "힘든 것들은 전작에서 해봐서 육체적으로 힘들진 않았다. 밑바닥에 깔린 그 정서를 표현하는 게 힘들었다"고 밝혔다.

북한말을 쓰기도 쉽진 않았다. "새로 도전하는 건데 어색하다고 욕 먹을 수도 있는 거고, 그거 무서우면 아무것도 못 하니 '고고싱'하자 했어요. 북한 지역별로 심하게 다르더라고요. 북한말 선생님, 감독님과 많은 상의 끝에 자강도란 지방에 사는 사람이 기완과 정서가 맞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났어요. 촬영이 들어가고 나서도 바꾸고 또 바꿨죠. 외국인이 들을 땐 같겠지만 한국인이 듣기엔 너무 생소한 단어가 많더라고요. 출연료 받았으니 열심히 했죠."
송중기 /사진=넷플릭스
송중기 /사진=넷플릭스
김희진 감독은 송중기에 대해 '기대 이상으로 진지하고, 납득이 안 되면 며칠씩 고민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송중기는 "감독이 진짜 순하고 착하신데 인내심도 있다. 아마 제가 미우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대사가 용납이 안 되어 촬영 스케줄까지 조정한 적도 있다고. 그는 "보는 이를 공감하게 하려면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면 안 된다"며 "어떤 부분인지 편집된 신이라 말할 순 없다. 영화가 다 그렇지 않나"라고 부연했다.

이날 송중기는 "출연료 받았으면 돈값 해야죠. 열심히 해야죠"라는 말을 4번이나 했다. 관객과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대사 한 줄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타이틀롤로서 작품의 흥행을 도맡아야 한다는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주인공일 때도, 주인공이 아니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중엔 저런 선배가 되어야지, 저렇겐 되지 말아야지 하고요. 주인공이 되고 나서 더 크게 느꼈죠. '돈값' 하겠다는 건 주인공으로서 책임감입니다. 작품을 할 때 주인공으로서 일상생활에 해가 되는 행동도 하면 안 되고 그런 게 당연하죠. 대단한 직업은 아니지만 배우이고, 저도 집에 가면 가장이에요. 이 산업에 앞서 있을 때, 주인공을 맡았을 때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죠. 모두의 인생이 걸려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내가 너무 진지했느냐"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왜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안 그럴 수 없다. 저는 항상 흥행을 바란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욕망도 있지만 투자하는 분, 스태프들 생각하면 그래야 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런 부분은 모두 가정교육 덕분이다.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며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송중기 /사진=넷플릭스
송중기 /사진=넷플릭스
송중기는 전작인 '빈센조' 때 '송반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현장에서 주·조연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까지 챙기기 때문이다. 이런 부담감은 없느냐는 질문에 "미담 때문에 하면 부담이 있을 수 있다. 얼굴에 분칠하는 배우여도 그런 건 억지로 하고 싶진 않다. 얼마나 피로한 삶이냐"며 "구성원들이 좋아 반장 놀이를 한 거다. 주인공이라 책임감 비슷한 것도 있고"라고 답했다.

송중기는 앞으로도 주인공의 책임감을 가지고 또 다른 도전을 해나갈 예정이다. 그는 "드라마하고 영화 하는 밸런스를 좋아하는 편"이라며 "드라마에선 '화란', '로기완'과 같은 정서의 작품은 시도하기 어렵다. 주인공으로서 흥행시키고 싶어하는 책임감이 있다. 그런 책임감 없으면 돈 많이 받으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드라마 'MY YOUTH(마이 유스)'(가제)의 제안을 받고 현재 검토 중이다.

"하고 싶은 역할 같은 건 없어요. 하고 싶은 장르는 있죠. 이 업계에 호러 영화가 왜 이렇게 안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투자가 안 되는 건지... 그래서 요즘 '파묘'가 잘 되고 있어 너무 반가워요. 프로모션 끝나면 조만간 보러 가려고요. 너무너무 좋아하는 장르라 '드디어 터지는구나'했죠. 장재현 감독님 모르지만, 박수 쳐 드리고 싶어요. 저도 꽂힌 장르는 호러입니다. 메인에 좀 써주세요. 호러 영화 관계자들이 볼 수 있게요. 저 호러 영화 너무 하고 싶다고. (하하)"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