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덩굴로 덮인 계곡과 잔잔한 바닷가가 있는 고장. 뉴질랜드 남섬 최북단에 위치한 말버러는 자타가 공인하는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의 수도, 말버러

말버러에서 처음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40여년 전이다. 영국 출신의 이민자가 이곳의 토양이 와인용 포도 재배에 적합한 것을 발견하면서 와인 생산을 시작했다. 실제로 말버러는 남섬에서도 가장 긴 일조시간과 따뜻한 기후, 배수에 용이한 토질 등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는 덕분에 뉴질랜드 전체 와인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말버러 와이너리의 여름 풍경./사진=뉴질랜드관광청
말버러 와이너리의 여름 풍경./사진=뉴질랜드관광청
샤르도네, 피노 누아, 리슬링 등 다양한 품종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지만, 말버러라는 이름을 세계에 떨친 것은 ‘소비뇽 블랑’ 품종 덕분이다. 말버러의 와인은 신대륙 와인답게 생동감 넘치는 맛과 향, 그리고 신선한 풍미와 강렬한 아로마가 특징인데, 이러한 장점은 소비뇽 블랑에서 두드러진다.

말버러의 소비뇽 블랑은 청사과, 허브의 푸릇함과 상큼함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파인애플과 오렌지 같은 과일의 풍미도 갖춰 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신선한 와인을 맛보기 위해 전세계에서 말버러로 와이너리 투어를 떠나오는 이들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 말버러에서는 와인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나온 이들을 위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클래식 뉴질랜드 와인 트레일. 북섬의 혹스베이부터 출발해 와이라라파, 웰링턴 등 뉴질랜드의 대표 와인 산지들을 돌아본 뒤 마침내 말버러에서 여정을 마무리하는 투어로, 그야말로 와인을 위한, 와인에 의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만의 취향이 뚜렷한 와인 고수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생산자를 직접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말버러의 와이너리들은 자체적으로 시음과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와인을 생산하는 과정을 둘러보고, 한 브랜드의 와인을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운이 좋다면 와이너리의 창립자를 직접 만나 대화하는 행운이 따를지도 모른다.

말버러로 와인 투어 떠나기

남섬의 북쪽에 위치한 말버러까지는 직항편이 없어 다소 긴 여정을 각오해야 한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국내선 항공편으로 넬슨 공항까지 1시간 30분여를 이동한다. 넬슨 공항에서는 렌터카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수도인 웰링턴에서 페리를 타고 인근 도시인 픽턴까지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에선 차로 약 5시간 소요된다. 꽤나 긴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만큼, 현지에서 되도록 많은 와인을 맛볼 것!
말버러에서는 와인을 즐기며 여유로운 휴가를 즐기는 와인 마니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사진=뉴질랜드관광청
말버러에서는 와인을 즐기며 여유로운 휴가를 즐기는 와인 마니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사진=뉴질랜드관광청

말버러 필수 방문 와이너리는?

말버러의 150여 개의 와이너리 중에서도 특색 있는 곳을 꼽자면 로슨스 드라이 힐스(Lawson’s Dry Hills) 와이너리를 들 수 있다. 부티크 와인 협회인 ‘패밀리 오브 트웰브’의 멤버인 이곳은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 와이너리다. 1982년부터 로스 로슨, 바바라 로슨 부부가 포도밭을 일구기 시작해 현재는 팀 에빌, 폴린 에빌 부부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대표 품종인 소비뇽 블랑은 물론이고 게뷔르츠트라미너, 리슬링, 샤르도네, 피노 누아 등 다양한 품종으로 빚어낸 와인을 생산한다. 와이너리는 매일 문을 열고 예약 없이도 방문해 맛을 보고 구매할 수 있다.
로슨스 드라이 힐스의 인비니티(Inviniti) 와인./사진=뉴질랜드관광청
로슨스 드라이 힐스의 인비니티(Inviniti) 와인./사진=뉴질랜드관광청
라파우라 스프링스의 대표 제품인 소비뇽 블랑./사진=뉴질랜드관광청
라파우라 스프링스의 대표 제품인 소비뇽 블랑./사진=뉴질랜드관광청
또 다른 와이너리인 라파우라 스프링스 와인(Rapaura Springs Wines)은 1980년대 초부터 말버러 지역 토박이인 넬슨스와 위핀스라는 이름을 가진 두 가족이 의기투합해 운영하는 소규모 부티크 와이너리다. 라파우라 스프링스라는 와인 명칭은 포도밭을 가로지르는 샘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곳 역시 피노 그리, 피노 로제 등 다양한 품종의 와인을 생산하지만 대표 주자는 역시 소비뇽 블랑이다. 유수의 국제 어워드에서 상을 휩쓸 정도로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말버러의 그 청정 자연 속으로

말버러는 자전거를 타고 미식 여행을 떠나기에도 이상적이다. 말버러의 와인 지대 심장부에 자리한 블레넘은 와인 및 미식 테마 여행지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뉴질랜드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히는 블레넘에는 30곳이 넘는 와이너리가 있으며, 그 주변으로 카페, 레스토랑, 바, 골프 코스, 개성 넘치는 숙박시설 등이 모여있다.

포도밭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는 현지의 신선한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 과 뛰어난 궁합을 자랑하는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뉴질랜드 최초의 파머스 마켓으로 알려진 ‘말버러 파머스 마켓’ 또한 미식가라면 놓치면 안 될 곳. 매주 일요일 장이 설 때마다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과 식품을 가지고 고객과 만난다.
소비뇽 블랑의 수도, 그 청정한 자연 속에서의 한 잔./사진=뉴질랜드관광청
소비뇽 블랑의 수도, 그 청정한 자연 속에서의 한 잔./사진=뉴질랜드관광청
아름다운 자연이 빚어내는 와인만큼이나 말버러에는 그 이상의 매력이 상존한다. 말버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로 손꼽히는 말버러 사운즈(Marlborough Sounds)는 지각 활동으로 지반이 침하한 계곡 지형 사이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닷물이 들어와 형성된 지형이다. 무려 1500km에 달하는 해안선, 천연림과 푸른 언덕이 어우러지는 자연 풍광은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이 지역은 돌고래, 물개, 펭귄 등 다양한 야생동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며, 아름다운 해안에서는 스쿠버다이빙, 낚시, 보트 및 크루즈 투어를 체험할 수 있다.

천연림을 통과하는 하이킹 투어 코스도 인기다. 말버러 사운즈에서 등산과 산악자전거는 빼놓을 수 없는 액티비티다. 남알프스 외곽의 뉴질랜드 최고봉인 해발 2885m의 타푸아에오우에누쿠산이 이 지역 일대에 있어 등산가와 하이커의 영감을 자극한다. 항구 도시인 픽턴 역시 말버러 사운즈로 향하는 주요 길목인 동시에 남섬에서 페리를 타는 거점으로 주목할 만한 여행지다.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인이 정착한 이 작은 해변 도시에는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당시 세워진 옛 건물들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바다를 조망하는 카페, 레스토랑이 산적해 있어 여행 중 휴식을 취하기에도 이상적인 고장이다. 100% 즐길 수 있는 크루즈, 낚시, 돌고래 관찰, 바다 카약 등 다양한 해상 스포츠 체험을 할 수 있으며, 뉴질랜드 최고의 산악 자전거 트랙으로 손꼽히는 퀸샬롯 트랙의 산악 자전거 투어 패키지도 픽턴에서 누릴 수 있다.

말버러 와인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말버러 와인&푸드 페스티벌

말버러 와인 투어를 계획 중이라면 2월을 노려보자.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미식 축제인 ‘말버러 와인&푸드 페스티벌’이 매년 2월마다 열리기 때문. 축제에서는 와인은 물론이고 현지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특히 말버러는 바다에 인접한 만큼 녹색 홍합 등 다양한 해산물이 풍부해 ‘미식의 고장’으로도 명성이 높은 곳. 축제에서는 이렇듯 신선한 해산물과 와인을 즐기면서 말버러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친절한 ‘키위(뉴질랜드 현지인)’들과 어울릴 수 있다. 올해의 말버러 와인&푸드 페스티벌은 2월 11일 토요일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