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젊은지휘자상' 수상 후 첫 국내 무대…9일 국립심포니 협연
"작곡할 때 꿈 괴롭게 키워나갔다면 지휘할 때는 좀 더 행복해져"
지휘자 윤한결 "동작 하나로 음악 흐름 마법처럼 바꾸고 싶어"
"지휘자는 소리를 내는 데 직접 뭘 하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잖아요.

이런 점이 즐거워요.

"
지난해 8월 한국인 최초로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받은 윤한결(30)이 수상 이후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 선다.

그는 오는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에프랑 바부제와 협연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윤한결은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회에 나갔던 사람들이나 수상자를 봐도 수준이 높아 평생 오디션도 못 볼 거라고 생각했다"며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즐겁게 했는데 결과가 잘 나와 기쁘다"고 뒤늦은 소감을 밝혔다.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은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의 이름을 딴 국제 대회로, 젊은 지휘자들의 등용문으로 평가받는다.

윤한결 역시 우승 이후 세계 무대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윤한결은 "대회 이후 제 마음의 변화는 크게 없다"며 "원치 않게 참가해야 하는 대회는 이제 없겠다는 안도감은 있었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지휘자 윤한결 "동작 하나로 음악 흐름 마법처럼 바꾸고 싶어"
사실 윤한결은 지휘보다 작곡을 더 오래 공부했다.

대구 출생인 그는 어렸을 때 다니던 동네 피아노 학원 선생의 추천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했고, 서울예고 재학 중 독일로 건너갔다.

이후 뮌헨 국립음대에서 작곡과 더불어 피아노와 지휘를 배웠다.

윤한결은 "작곡 이외의 다른 경험도 해보고 싶어서 피아노와 지휘 공부를 했다"며 "작곡을 통해서 제 꿈을 괴롭게 키워가고 있었다면, 피아노나 지휘를 통해서는 삶이 좀 더 행복해졌다"고 웃었다.

"작곡은 아침에 뭔가 떠올랐는데 막상 저녁에 쓰려고 보면 생각이 안 나거나,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일어나면 너무 별로인 경우들이 많아요.

이게 다 과정이지만 보이는 결과가 없으니 너무 힘들어요.

대신 지휘는 이미 완성된 작품들을 연주하잖아요.

지휘자의 동작 한 번으로 이미 멋진 작품의 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바로 느껴지는 게 있죠."
지휘자 윤한결 "동작 하나로 음악 흐름 마법처럼 바꾸고 싶어"
윤한결이 작곡보다 지휘에 좀 더 집중하게 된 건 2018년께다.

20대 초반이던 당시 제네바 콩쿠르에서 결선에 올랐지만, 1등을 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실망하고 목표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윤한결은 2019년 세계 음악 축제 중 하나인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아카데미에서 지휘 부문 1등상인 네메 예르비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고, 2021년에는 국립심포니가 주최한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2위와 관객상을 받으며 입지를 다졌다.

2022년에는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다니엘 바렌보임, 정명훈 등이 속한 기획사 아스코나스 홀트와 전속 계약도 맺었다.

윤한결은 어떤 지휘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지휘자들에게 인정받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지휘자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로는 '지휘 테크닉'을 꼽았다.

그는 "테크닉과 좋은 퀄리티(질)의 음악이 꼭 비례하지는 않지만, 음악가한테 아무 말 없이 (지시 사항을) 바로 전달하는 지휘자의 테크닉은 매력적인 요소"라며 "예전부터 중요시했던 부분이고, 지금도 지휘할 때 30∼40%는 테크닉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윤한결은 실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지휘 테크닉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지휘자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지휘자에 대해 "동작만으로 미세하게 속도, 소리를 조절한다고 들었다"며 "자세 하나로 소리가 완전히 바뀌고, 갑자기 음악의 흐름도 바뀌는 마법을 보여준다"고 감탄했다.

지휘자 윤한결 "동작 하나로 음악 흐름 마법처럼 바꾸고 싶어"
윤한결은 지휘자로서 브루크너의 교향곡,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등을 자신의 레퍼토리로 삼고 싶다고도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어 도전하고 싶은 작곡가로는 말러를 꼽았다.

"아내 말로는 제가 이성적이어서 말러를 어려워한대요.

말러를 들으면 '슬프다', '화난다', '더 울어라', '더 감동받아라' 이런 느낌인데 저는 '굳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직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나 봐요.

(웃음)"
윤한결은 작곡의 어려움을 호소하긴 했지만, 2021년 최신작 '그랑드 히팝'을 내놓는 등 작곡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올해 8월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부상으로 서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서는 현재 작업 중인 신작도 선보일 예정이다.

다만 곡의 주제만 15번 정도 바뀌었을 정도로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제가 큰 실수를 하나 했다"며 "(페스티벌 측에서) 현대곡을 하나 지휘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농담으로 '그럼 내가 하나 쓸까?'라고 했더니 바로 컨펌(승인)이 떨어졌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지난 두 달간 작곡을 해보려고 했지만, 쓰다 지우고를 반복하고 있어 10마디 정도 썼다"며 "갑자기 '필'(느낌)을 받아서 잘될 때가 있는데, 그것만 기대하고 있다"고 멋쩍게 웃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