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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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암호화폐 관련 단체들이 오는 11월 치러질 상·하원의원 및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암호화폐에 친화적인 후보자를 위해 최소 1300만달러(약 173억원)를 지출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암호화폐 업계가 규제 완화와 산업 활성화를 목표로 대통령 선거인단 30%가 결정되는 슈퍼 화요일(5일)을 겨냥해 막판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분석이다.

美 암호화폐 업계"코인 키워줄 정치인에 돈 주자"

로이터는 3일(현지시간) 미국 정치 자금을 조사하는 비영리단체 오픈시크릿의 데이터를 인용해 암호화폐 관련 슈퍼팩(특별정치활동위원회)인 페어셰이크, 프로텍트 프로그레스, 디펜드 아메리칸 잡스 등이 슈퍼 화요일을 위해 최소 1300만달러(약 173억원)를 지출했다고 보도했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 1월까지 위 슈퍼팩 3곳은 총 1억200만달러(약 1357억5400만원)에 가까운 자금을 모금했다. 슈퍼팩은 미국에서 무제한으로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특별정치활동위원회다.

오픈시크릿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암호화폐 업계가 올해 선거를 위해 기부한 금액은 5920만달러로 집계됐다. 2020년 대선 때는 160만달러에 불과했으나, 2022년 중간 선거에 2680만달러로 2년만에 17배 가까이 늘며 덩치를 키웠다.

캠페인 전략도, 후보자 소속 정당도 다양해

암호화폐 기반 슈퍼팩 3곳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격 및 후원 캠페인을 펼치며 정치 지형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일례로 페어셰이크는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 송금 서비스 기업인 리플 등이 지원한 자금을 바탕으로 후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쉬 블라스토 페어셰이크 대변인은 "암호화폐 커뮤니티는 승리하기 위해 정치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의제와 비전에 부합하는 후보자와 함께할 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케이티 포터(Katie Porter) 하원의원이 지난 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상원의원 후보자 TV토론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케이티 포터(Katie Porter) 하원의원이 지난 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상원의원 후보자 TV토론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페어셰이크는 전체 후원금(약 1128만달러) 중 88%에 달하는 1002만달러(약 133억원)를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소속 케이티 포터를 공격하는 데에 썼다. 포터 의원에 반대하는 TV 광고를 송출하는 방식이다. 케이티 포터는 2022년 반(反) 암호화폐 정치인으로 알려진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함께 암호화폐 채굴에 쓰이는 전력이 기후 변화와 에너지 공급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며 암호화폐 업계의 반발을 샀다. 선거를 앞두고 페어셰이크의 네거티브 전략이 거세지자 린제이 라일리 케이티 포터 선거 대변인은 이 단체를 "수상한 슈퍼 PAC"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디펜드 아메리칸 잡스는 556만달러(약 74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공화당 의원에게 모두 몰아줬다. 짐 뱅크스 인디애나 상원의원과 짐 저스티스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에게 각각 300만달러, 150만달러를 후원했다. 두 정치인은 지난해 7월 하원 공화당이 발의한 '21세기를 위한 금융 혁신 및 기술 법안'에 공동 후원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법안은 암호화폐를 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규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일 법안이 통과될 경우 암호화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아닌 미국 상품거래위원회(CFTC)가 관할하게돼 규제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

암호화폐 관련 슈퍼팩들은 업계와 뜻을 함께하는 민주당 의원에게도 뭉칫돈을 건넸다. 프로텍트 프로그레스는 앨라배마주 2차 의회 선거구 경선에 출마한 민주당 소속인 쇼마리 피겨스에게 약 171만달러(약 23억원)를 후원했다. 민주당 소속 줄리 존슨 텍사스 하원의원에게도 선거 자금으로 96만1800달러(약 13억원)를 기부했다. 두 의원은 모두 홈페이지에서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암호화폐 업계가 미국 정치의 큰 손으로 떠오르며 선거법 위반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상자산 거래소 FTX 창립자인 샘 뱅크먼프리드가 선거자금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12월 다시 기소되면서다. 뱅크먼프리드는 1억달러(약 1329억원)이상을 미국 정치자금으로 기부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11월 사기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에 선거 자금을 지원 받았던 일부 정치인 캠프에서는 후원금을 반환하기도 했다. 시에라 토레스 스펠리시 스텟슨 대학 소속 법학교수는 "FTX 관련 사례는 모든 선거 자금 캠페인에 대한 경고다"라고 말했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