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공천 파동으로 불거진 더불어민주당의 친명(친이재명)·비명(비이재명) 간 계파 갈등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비명계는 가칭 ‘민주연대’를 조직해 연쇄 탈당 등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이 총선을 40여 일 앞두고 사실상 ‘심리적 분당’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천을 둘러싼 민주당의 내홍은 27일 새 국면을 맞았다. 민주당이 이날 계파 갈등의 뇌관으로 지목돼 온 서울 중·성동갑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대신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전략 공천하면서다. 임 전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친문(친문재인) 핵심 인사다. 전 전 위원장은 ‘이재명 당대표 정치테러대책위원장’을 지낸 친명 인사다.

임 전 실장의 컷오프(공천 배제)가 결정되자 친문계인 고민정 최고위원은 “현 지도부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당 지도부 중 유일한 비명계인 고 최고위원은 지도부에 최근 공천 갈등 수습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비명계인 박영순 의원(대전 대덕)은 이날 민주당을 탈당해 ‘이낙연 신당’인 새로운미래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했고, 이상헌(울산 북구)·설훈(경기 부천을) 의원도 추가 탈당을 예고했다.

"남 가죽 벗겨 피칠갑"…野의총서 이재명 성토
李는 침묵…비명 기동민 컷오프

27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의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대장동 공판으로 불참이 예상됐던 이재명 대표는 의총에 참석해 2시간가량 자리를 지켰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날 3시간가량 진행된 의총에서 의원들은 친명(친이재명)계 지도부를 겨냥해 비판을 쏟아냈다. 홍영표 의원은 이 대표 면전에서 “(이 대표가) 혁신 공천을 하다 보면 가죽을 벗기는 아픔이 있다고 했는데, 당 대표가 자기 가죽은 벗기지 않고 남의 가죽만 벗기면서 손에 피 칠갑을 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홍 의원은 “명문(이재명·문재인)정당이 아니라 멸문정당이 되고 있다”며 “총선 승리와 멀어지는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지도부가 너무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장을 지낸 중진 박병석 의원은 “정권은 유한하고 권력은 무상하다. 바른길로 가라는 취지로 발언했다”며 “지도부가 잘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공천 여론조사에 대한 ‘외부 개입설’도 공식적으로 거론됐다. 당 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정필모 의원은 의총에서 “(리서치DNA를) 누군가가 전화로 해당 분과위원한테 지시해서 끼워 넣었는데 누구 지시인지 밝힐 수 없다고 했다”며 “허위 보고를 받았고, 속았다”고 말했다. 리서치DNA는 비명계 현역 의원을 배제한 경선 여론조사를 해 ‘사천’ 논란을 일으킨 업체다. 정 의원은 “제가 통제·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생각해서 (위원장을) 사퇴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당 공관위는 비명계 기동민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성북을을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소관으로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금품 수수 혐의로 사실상 기 의원을 컷오프(공천 배제)한 것이다. 비슷한 혐의를 받는 친명계 이수진 의원(비례)은 경기 성남중원에서 경선을 보장받았다.

한재영/원종환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