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베일 벗은 '기업 밸류업'…핵심은 자율참여·인센티브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내용이 윤곽을 드러냈다. 올 하반기부터 상장사들은 주가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방안을 공시하게 된다. 우수한 제고방안을 내놓은 기업은 각종 세제 지원도 받을 수 있다.

26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유관기관과 함께 여의도 한국거래소 콘퍼런스홀에서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 1차 세미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을 발표했다.

앞으로 전체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상장사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스스로 수립하고 연 1회 자율 공시하게 된다. 기업가치 개선 계획에는 '현황 진단→목표 설정→계획 수립→이행 평가·소통' 등의 내용이 담긴다.

우선 기업은 수익성, 성장성, 시장평가, 주주환원 등 다양한 지표를 분석해 스스로 현황 진단을 거친다. 또 주주, 이사회, 감사기구 측면에서도 지배구조 현황을 점검한다.

기업은 3년 이상의 중장기 목표를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 및 달성 시점도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에는 수익성 및 주주환원 계획, 지배구조 개선 계획 등이 들어가야 한다.

정부는 적극적인 인센티브 부여로 기업들의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매년 우수기업에 대한 표창을 수여하고, 모범 납세자 선정 우대 등 세정 지원 혜택도 제공할 계획이다.

시장 참여자들을 위한 지원방안도 마련한다. 정부는 우선 수익성이나 시장 평가가 양호한 기업들로 구성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오는 9월 중 개발해 기관·외국인 투자자들이 벤치마크 지표로 활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 지수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E), 배당성향, 배당수익률, 현금 흐름 등 주요 투자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등생' 종목들로 구성하기로 했다.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오는 12월 출시 및 상장돼 일반투자자들도 기업가치 우수 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한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일본의 '프라임150 지수'를 일부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지수는 일본 상장사 중 ROE가 8%가 넘고 PBR이 1배 이상인 기업을 골라 구성종목 150개 중 절반 가량(75개)을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실제 코리아 벨류업 지수의 경우 프라임150 지수의 문제점 등을 고려해 독자적인 방법론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게 거래소 측 설명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상장기업의 주가 디스카운트 요인은 매우 복잡하다"며 "PBR ROE와 같은 단순 지표보다 중장기적 기업가치 제고 방안으로 자본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렪 발언하고 있다. 배태웅 기자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렪 발언하고 있다. 배태웅 기자
이날 개최된 1차 세미나에서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방안을 놓고 기업, 자본시장, 학계의 기대와 추가 제안 등이 함께 제기됐다. 패널 토론에 나선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잘 작동하려면 자사주 매입의 효과를 더욱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증시에서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더라도 소각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주주환원 효과가 떨어지는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은 시총을 산정할 때 발행 주식수를 기준으로 하는데 글로벌 기준은 유통 주식 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며 "소각을 의무화하지 않아도 유통 주식 수 기준으로 시총 산출 방식을 변경하면 자사주는 시총에서 제외되니 자사주 매입이 주는 주주환원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코스닥시장 기업의 상황을 고려한 기업가치 제고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벤처·바이오 등 모험 자본 성격이 강한 코스닥기업 특성상 주주환원이 비교적 부진한 경우가 많고, 규모가 있는 기업이라도 대기업에 종속되는 성향이 커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업종별 시장별 투자지표를 공개한다고 하지만 코스닥시장과 같은 경우는 차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또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한 기업 가치 제고방안 공시가 이사회에 부담을 줄 경우 이 또한 참여율을 떨어뜨릴 수 있어 이사회에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