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이달 제주에서부터 시행하려던 ‘재생에너지 입찰제도’가 태양광·풍력 사업자 반발에 가로막혀 지연되고 있다. 그동안 보급을 명분으로 ‘우선 구매’ 혜택을 받던 재생에너지에 가격 경쟁을 도입하는 정책인데 사업자들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15만 명에 달할 정도로 수가 늘어난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이익집단화하며 에너지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격경쟁 싫다"…이익집단된 15만 재생에너지 사업자

사업자들 “수익구조 변경 안 돼”

26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산업부는 이달 초 제주에서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본격 시행하려 했지만 일정이 한 달 가까이 밀렸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그동안 전력도매시장 밖에서 우선 구매 혜택을 받던 재생에너지는 경쟁에 노출된다. 시장 안에 들어와 석탄·가스 등 다른 발전원과 마찬가지로 가격과 예상발전량을 입찰해야 한다. 낮은 가격 순서대로 낙찰되고 값비싼 재생에너지 발전기는 출력제어(가동 중지)를 받는 등 시장 원리가 도입되는 것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의 반발에 제도 시행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지난 19일 제주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 회원들은 이 제도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당초 산업부는 제주에서 제도를 1년가량 운영한 뒤 전국으로 확대할 생각이었지만 시작부터 일정이 밀려 차질이 빚어졌다.

사업자들은 기존 제도 당시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이를 불리하게 바꾸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일정 기간 제도를 모의 운영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발표한 제도를 시행 직전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제주에서의 파행은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생에너지 보급 과속으로 전국에 사업자가 급증해 에너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익집단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20년 8만2810명이던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는 2021년 11만5259명, 2022년 14만5832명으로 2년 만에 76.1% 증가했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 수급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을 수립할 때 계속 애를 먹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력시장 내 기현상도 잇따라

재생에너지 사업자 대부분은 태양광이 차지하고 있다. 태양광 설비용량은 최근 들어서도 가파르게 늘어나며 원전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정부 종반인 2021년 말 1만8521㎿이던 국내 태양광 설비는 작년 말 2만3947㎿로 2년 만에 29.3%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원전은 2만3250㎿에서 2만4650㎿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재생에너지가 급증하면서 국내 전력시장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설 연휴 전력도매가격(SMP)이 사상 최초로 제주와 육지 모두에서 0원을 기록한 게 대표적이다. ‘SMP 0원’은 쉽게 말해 일부 필수계통유지운전(머스트런)을 제외하고는 연료비가 ‘제로’인 재생에너지가 전력 생산 전부를 담당했다는 의미다. 이 경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발전사업자들은 전혀 수익을 낼 수 없게 된다.

재생에너지 발전이 너무 늘어난 탓에 원전 출력제어(감발)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원전 감발량은 사상 최초로 5000㎿를 넘어섰다. 봄철 등 일조량이 많은 시기에 재생에너지 발전이 전력 수요를 대부분 충당해 필요 없어진 원전 발전량을 줄였다는 뜻이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