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년 키이우에서] 상이군인 곁에는 쇼핑몰 성업…긴장과 일상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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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2월24일 러 침공…정전·단수 0회, 공습에도 텅빈 방공호 '무뎌진 공포'
"너무 지쳤다" 피로도 가중…"더는 우리 아이들 죽지 않길", "시민들 전장에 무관심" 토로도
"러 독재 오래 못가, 우리가 승리" 외치지만 흔들리는 결사항전…싹트는 정치 불만도
현지서 북한 대러 무기 공급에도 '촉각'…전쟁 끝나도 완전한 재건과 복구는 '아득' 버스터미널, 광장, 호텔 앞, 어딜 가나 눈에 띄는 군복 차림 남성들이 교전국에 왔음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눈을 돌리면 번화가에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백화점도 명품관부터 할인매장까지 정상영업 중이었다.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은 듯한 풍경이었다.
러시아 침공에 따른 전쟁 발발 2년(24일)을 앞두고 지난 18일(현지시간)부터 22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버스를 타고 16시간을 달려 수도 키이우에 도착했다.
전쟁 때문에 여전히 하늘길이 막혀있다는 불편함과,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읽힌 피로감 같은 것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취재 이틀째인 지난 19일에는 건물 잔해와 총알 자국이 여전한 키이우 외곽 보로디안카에서 처음 접한 공습 경보 사이렌에 가슴이 철렁했다.
낯선 동양인과의 대화에 흔쾌히 응해준 사람들은 새벽의 고요를 뚫고 포성이 울려퍼지던 2022년 2월 24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 조금씩 긴장감이 풀어지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어렵게 챙겨온 방탄조끼와 헬멧을 적어도 이번 방문 동안 착용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한동안 이곳 시민들을 괴롭혔던 정전과 단수도 한 차례도 경험하지 못했다.
미사일에 맞아 천장과 벽면이 뜯겨나갔던 대형 쇼핑몰 레트로빌은 보수공사를 마치고 지난주 재개장해 손님들을 맞았다.
만성화한 공포에 무뎌진 것일까, 20일 오전 5시 48분 다시 공습 경보를 접했지만, 기자 말고는 아무도 호텔 지하주차장에 마련된 방공호에 내려오지 않았다.
현지 취재를 도와준 올렉산드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이렌이 하루에 4∼5번씩 울렸다"며 "키이우에 방공망이 보완돼서 예전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조금씩 안정을 되찾은 키이우의 풍경에서는 아우디이우카 퇴각 등 매일 악화하는 동남부 전황과 괴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700일 넘게 이어진 전쟁을 바라보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시각은 제각각이었다.
21일 저녁 시내 TSUM 백화점 앞 흐레샤티크 거리에서 만난 대학생 아나스타샤는 "민간인들의 상황은 나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전쟁에 너무 지쳤다"며 전쟁 이전의 일상을 갈구했다.
반면 길 건너에서 목발을 짚고 서있던 군인 안드리는 "전방에서 싸우다가 복귀한 군인으로써, 사람들이 도시에서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힘들다"며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안드리의 옷소매를 꼭 붙잡은 어머니 라리사는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쉴새없이 닦아냈다.
안드리가 "무너지지 않는 독재 정권은 없고, 러시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바람을 말하자 라리사는 "한 명의 어머니로서, 더는 우리의 아이들이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결사항전'으로 똘똘 뭉쳤던 분위기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개전 초기부터 키이우에 머물고 있는 한 외국인은 "정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요즘 눈에 띄게 늘었다"며 "대놓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판하는 현지인도 봤다"고 전했다.
대통령과의 불화설 끝에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전 총사령관이 경질된 데 대한 여론도 냉랭해 보였다.
친구와 택시를 기다리던 야니나는 "우리가 믿고 있던 잘루즈니가 그렇기 되니 너무 고통스러웠다"며 "(새 총사령관) 시르스키는 2022년 키이우를 지켜낸 장군이니, 그를 임명한 게 나쁜 결정이 아니길 바랄 뿐"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전쟁 초반 동남부 도네츠크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영웅적 항전을 펴다 러시아 점령 후 포로가 된 아조우 연대 병사들의 처우도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쟁점이다.
정부가 이들의 석방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키이우 시내 독립 광장에서 매일 열리고 있지만, 정부는 주로 러시아 측에서 이 부대에 제기하는 네오나치 논란이 부담인 듯 적극 나서지 않는 눈치다.
키이우에서 만난 한 군인은 기자가 원할 경우 헤르손이나 하르키우, 자포리자 등 어느 교전 지역으로든 차편을 찾아줄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군인이 언급한 동남부 교전 지역은 우리 외교부가 신변 안전 문제로 인해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 곳들이라 직접 찾지는 못했다.
현지에서는 북한이 러시아군에 미사일과 포탄을 공급하고 있다는 것도 큰 이슈 중 하나였다.
기자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 행인들은 "한국이면, 북한 아니고 남한 맞지요"라고 다시 확인하기 일쑤였다.
키이우 방문 마지막 날인 22일 터미널에서 바르샤바행 버스를 기다리던 중 걸인 두 명이 차례로 다가왔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더라도 경제 재건과 복구에는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았다.
/연합뉴스
"너무 지쳤다" 피로도 가중…"더는 우리 아이들 죽지 않길", "시민들 전장에 무관심" 토로도
"러 독재 오래 못가, 우리가 승리" 외치지만 흔들리는 결사항전…싹트는 정치 불만도
현지서 북한 대러 무기 공급에도 '촉각'…전쟁 끝나도 완전한 재건과 복구는 '아득' 버스터미널, 광장, 호텔 앞, 어딜 가나 눈에 띄는 군복 차림 남성들이 교전국에 왔음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눈을 돌리면 번화가에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백화점도 명품관부터 할인매장까지 정상영업 중이었다.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은 듯한 풍경이었다.
러시아 침공에 따른 전쟁 발발 2년(24일)을 앞두고 지난 18일(현지시간)부터 22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버스를 타고 16시간을 달려 수도 키이우에 도착했다.
전쟁 때문에 여전히 하늘길이 막혀있다는 불편함과,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읽힌 피로감 같은 것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취재 이틀째인 지난 19일에는 건물 잔해와 총알 자국이 여전한 키이우 외곽 보로디안카에서 처음 접한 공습 경보 사이렌에 가슴이 철렁했다.
낯선 동양인과의 대화에 흔쾌히 응해준 사람들은 새벽의 고요를 뚫고 포성이 울려퍼지던 2022년 2월 24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 조금씩 긴장감이 풀어지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어렵게 챙겨온 방탄조끼와 헬멧을 적어도 이번 방문 동안 착용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한동안 이곳 시민들을 괴롭혔던 정전과 단수도 한 차례도 경험하지 못했다.
미사일에 맞아 천장과 벽면이 뜯겨나갔던 대형 쇼핑몰 레트로빌은 보수공사를 마치고 지난주 재개장해 손님들을 맞았다.
만성화한 공포에 무뎌진 것일까, 20일 오전 5시 48분 다시 공습 경보를 접했지만, 기자 말고는 아무도 호텔 지하주차장에 마련된 방공호에 내려오지 않았다.
현지 취재를 도와준 올렉산드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이렌이 하루에 4∼5번씩 울렸다"며 "키이우에 방공망이 보완돼서 예전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조금씩 안정을 되찾은 키이우의 풍경에서는 아우디이우카 퇴각 등 매일 악화하는 동남부 전황과 괴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700일 넘게 이어진 전쟁을 바라보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시각은 제각각이었다.
21일 저녁 시내 TSUM 백화점 앞 흐레샤티크 거리에서 만난 대학생 아나스타샤는 "민간인들의 상황은 나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전쟁에 너무 지쳤다"며 전쟁 이전의 일상을 갈구했다.
반면 길 건너에서 목발을 짚고 서있던 군인 안드리는 "전방에서 싸우다가 복귀한 군인으로써, 사람들이 도시에서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힘들다"며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안드리의 옷소매를 꼭 붙잡은 어머니 라리사는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쉴새없이 닦아냈다.
안드리가 "무너지지 않는 독재 정권은 없고, 러시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바람을 말하자 라리사는 "한 명의 어머니로서, 더는 우리의 아이들이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결사항전'으로 똘똘 뭉쳤던 분위기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개전 초기부터 키이우에 머물고 있는 한 외국인은 "정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요즘 눈에 띄게 늘었다"며 "대놓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판하는 현지인도 봤다"고 전했다.
대통령과의 불화설 끝에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전 총사령관이 경질된 데 대한 여론도 냉랭해 보였다.
친구와 택시를 기다리던 야니나는 "우리가 믿고 있던 잘루즈니가 그렇기 되니 너무 고통스러웠다"며 "(새 총사령관) 시르스키는 2022년 키이우를 지켜낸 장군이니, 그를 임명한 게 나쁜 결정이 아니길 바랄 뿐"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전쟁 초반 동남부 도네츠크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영웅적 항전을 펴다 러시아 점령 후 포로가 된 아조우 연대 병사들의 처우도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쟁점이다.
정부가 이들의 석방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키이우 시내 독립 광장에서 매일 열리고 있지만, 정부는 주로 러시아 측에서 이 부대에 제기하는 네오나치 논란이 부담인 듯 적극 나서지 않는 눈치다.
키이우에서 만난 한 군인은 기자가 원할 경우 헤르손이나 하르키우, 자포리자 등 어느 교전 지역으로든 차편을 찾아줄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군인이 언급한 동남부 교전 지역은 우리 외교부가 신변 안전 문제로 인해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 곳들이라 직접 찾지는 못했다.
현지에서는 북한이 러시아군에 미사일과 포탄을 공급하고 있다는 것도 큰 이슈 중 하나였다.
기자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 행인들은 "한국이면, 북한 아니고 남한 맞지요"라고 다시 확인하기 일쑤였다.
키이우 방문 마지막 날인 22일 터미널에서 바르샤바행 버스를 기다리던 중 걸인 두 명이 차례로 다가왔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더라도 경제 재건과 복구에는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