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브리티시 나잇' 연주회…엘가·월턴·브리튼 등 영국 레퍼토리
18년차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완벽한 합 나오는 소리 자부하죠"
"사실 크게 변한 건 없어요.

하지만 삶의 경험이 쌓였고, 음악적 지식도 깊어졌으니 저희가 밖으로 내는 소리도 조금은 달라졌겠죠."
올해로 18년 차를 맞은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은 한국의 실내악단 역사를 대변하는 팀이나 다름없다.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연주자들이 뭉쳐 만든 노부스 콰르텟은 대다수의 젊은 연주자들이 솔리스트를 꿈꾸는 한국에서 자신들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현재는 원년 멤버인 김재영(39·바이올린), 김영욱(35·바이올린)과 2018년 합류한 김규현(35·비올라), 2020년 합류한 이원해(33·첼로)가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 프로젝트를 마친 이들은 다음 달 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리티시 나잇'이라는 주제로 관객들을 만난다.

공연을 앞두고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만난 노부스 콰르텟은 자신들이 쓴 최초의 기록들에도 쉽게 들뜨지 않고, 고생스러웠던 과거 이야기도 무덤덤하게 전했다.

실내악 불모지던 한국에서 창단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기까지 긴 세월을 지내면서 내면이 탄탄해진 듯했다.

리더 김재영은 "지난 몇 년 동안 전곡 연주를 많이 했다"며 "한 작곡가만 깊게 팠더니 새로 뭘 할지 생각했을 때 좀 더 자유로운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고 이번 공연에 '브리티시 나잇'이라는 제목을 붙인 배경을 밝혔다.

노부스 콰르텟은 가장 최근 마친 베토벤 전곡 프로젝트를 비롯해 브람스(2021년), 쇼스타코비치(2021년), 멘델스존(2020년) 전곡 연주라는 학구적인 레퍼토리를 선보여왔다.

18년차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완벽한 합 나오는 소리 자부하죠"
보다 자유로워진 마음으로 선정한 이번 공연의 주제 '영국'은 영국 작곡가 윌리엄 월턴의 음악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네 사람이 함께 이동하던 차 안에서 월턴의 음악을 듣다가 '이거 한번 해볼까?'라고 의견이 모이면서다.

월턴을 비롯해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벤저민 브리튼이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김영욱은 "브리튼은 화성적인 색채나 소리에 대한 효과가 잘 드러나고, 월턴은 민속적인 요소 같은 리드미컬한 작법을 보인다"며 "엘가의 작품에는 낭만적인 감정들이 녹아있다"고 세 작곡가의 특징을 설명했다.

공연에서는 엘가의 현악사중주 마단조(작품번호 83번), 월턴의 현악사중주 가단조(작곡 연도 1947), 브리튼의 현악사중주를 위한 3개의 디베르티멘티와 현악사중주 2번 다장조(작품번호 36번)를 들려준다.

연주곡과 관련해 김규현은 "월턴의 곡이 굉장히 화려하다"며 "리드미컬한 요소를 집중해서 들으면 좋을 것 같다"고 관람 팁을 전했다.

이원해는 "브리튼은 첼로 곡이 많진 않아 '(이 작곡가의) 색깔이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연주하면 굉장히 다이내믹한 부분이 있다"며 "이번에 연주하는 곡은 주제가 파생되고 꼬이면서 보이는 변주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브리티시 나잇' 공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떨까.

노부스 콰르텟은 민속적인 특색과 함께 영국 하면 떠오른 이미지인 '젠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귀띔했다.

김재영은 "영국 음악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 민속적인 색깔이 짙고, 어떻게 보면 애국적인 모멘트를 느끼는 감성적인 부분도 있다"고 영국 음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어 김영욱은 "연주될 작품들이 각각 다르지만,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영국 남자들의 신사적인 느낌, 매너 같은 게 느껴진다"며 "너무 과하지 않은 느낌"이라고 해석했다.

18년차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완벽한 합 나오는 소리 자부하죠"
영국은 지난 2022/2023시즌 노부스 콰르텟의 세계 클래식계에서의 입지를 보여준 국가기도 하다.

노부스 콰르텟은 한국인 최초로 '실내악단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의 상주음악가로 선정돼 세 차례 무대를 가졌다.

위그모어홀은 노부스 콰르텟이 예술의전당 다음으로 가장 많이 섰을 만큼 여러 차례 공연했던 곳이다.

기념비적인 기록에도 김재영은 "저희 말고도 같은 시즌에 여러 명이 상주 음악가로 선정돼 공연했다"며 겸손해했다.

노부스 콰르텟은 앞서도 최초의 기록을 세워왔다.

2012년 ARD 콩쿠르 2위, 2014년 모차르트 콩쿠르 1위 등 한국 현악사중주단으로는 최초로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 소식을 알리며 이름을 알렸고, 굴지의 음악가들이 소속된 글로벌 에이전시 '지메나워'와 동양 악단으로는 최초로 계약하며 안정적인 기반을 다졌다.

18년차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완벽한 합 나오는 소리 자부하죠"
'최초'의 기록을 세워나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선례가 없기에 맨땅에 헤딩하듯 몸으로 부딪쳐야 했다.

지메나워와 계약했을 때야 비로소 '살길이 열리는구나'라고 안도감을 느꼈을 정도다.

김영욱은 "초창기에는 답 없는 현실과 싸우면서 음악을 이어 나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네 사람이 모여 작업하는 것 자체도 매 순간을 고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돌이켜 보니 대견스럽다"고 회상했다.

김재영은 "처음에는 (실내악단이) 저희밖에 없어서 뭘 해도 힘들고, 하면서도 책임감과 사명감도 느꼈다"며 "이제는 후배들도 많이 나왔으니 이제 저희는 하고 싶은 것들을 편하게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표면적으로 완벽한 합이 들릴 때가 있다"며 "아무 때나 나오는 게 아니라 음악의 밸런스가 완벽하게 맞았을 때 나오는데 노부스 콰르텟은 그 소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팀"이라고 자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