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의 '롬(사진 오른쪽)'이 자사 게임 '리니지W(왼쪽)'을 모방했다며 제시한 자료 사진.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의 '롬(사진 오른쪽)'이 자사 게임 '리니지W(왼쪽)'을 모방했다며 제시한 자료 사진.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가 카카오 자회사인 카카오게임즈에 또 소송을 걸었다. 카카오게임즈 신작 게임이 리니지를 베꼈다고 판단해서다.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 경쟁 심화로 리니지 시리즈의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체 지식재산권(IP)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엔씨 “롬, 리니지W 총체적 모방”
엔씨소프트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카카오게임즈와 레드랩게임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에 따른 소송을 제기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엔씨소프트가 문제 삼은 게임은 레드랩게임즈가 개발해 카카오게임즈가 오는 27일 출시할 게임인 ‘롬(ROM)’이다.

롬이 게임 콘셉트뿐 아니라 콘텐츠, 그래픽 디자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연출 등에서 전반적으로 ‘리니지W’를 따라했다는 게 엔씨소프트의 주장이다. 롬은 엔씨소프트의 지식재산권(IP) 기반 게임들인 리니지 시리즈와 흡사해 게임업계에서 ‘리니지 라이크(유사)’ 게임으로 분류돼왔다.
카카오게임즈가 이달 출시할 게임인 '롬'. 롬 유튜브 캡처
카카오게임즈가 이달 출시할 게임인 '롬'. 롬 유튜브 캡처
양사는 해외에서도 다투게 됐다. 엔씨소프트는 대만 법원에서도 저작권법 위반 등을 이유로 카카오게임즈를 고소했다. 카카오게임즈의 롬 사업에 전방위적으로 제동을 걸겠다는 전략이다. 롬은 한국, 대만 등 10개국이 서비스 대상이다. 카카오게임즈와 레드랩게임즈는 지난달 한국과 대만에서 롬을 소개하는 미디어 행사를 열기도 했다.

다음주 출시인데...흥행에 악재
카카오게임즈로선 롬의 흥행이 절실하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조241억원, 영업이익 74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11%, 58%가 줄었다. 지난해 7월 선보였던 MMORPG ‘아레스: 라이즈 오브 가디언즈’ 등 신작이 저조한 성과를 내면서 지난해 실적이 나빠졌다. 게임 업계에선 카카오게임즈가 롬으로 올해에 1000억가량의 매출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건 소송은 롬의 초기 흥행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카카오게임즈가 1심에서 패소해 법원에서 서비스 중지 명령을 받더라도 롬 서비스를 즉각 중단할 여지는 적다. 이 명령의 강제 집행 정지를 청구하거나 항소해 시간을 벌 수 있어서다. 다만 정식 출시를 앞두고 소송이 걸렸다는 점이 변수다. 고과금이 특징인 MMORPG 이용자로선 서비스 중단 여지가 있는 게임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양사 간 송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엔씨소프트는 카카오게임즈가 지난해 3월 출시했던 게임인 ‘아키에이지 워’가 ‘리니지2M’의 아이템 결합 방식, 게임 화면 등을 모방했다며 지난해 4월에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1심을 앞두고 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게임 장르 특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유사성이 보이면 앞으로도 법적 대응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 게임 '아키에이지 워(사진 오른쪽)'가 자사 게임 '리니지2M(왼쪽)'을 따라했다고 주장하며 제시한 자료. 엔씨소프트 제공
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 게임 '아키에이지 워(사진 오른쪽)'가 자사 게임 '리니지2M(왼쪽)'을 따라했다고 주장하며 제시한 자료. 엔씨소프트 제공
3년 전 소송 걸린 ‘R2M'은 서비스 중
엔씨소프트는 다른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도 꾸준히 법정에 올려왔다. 2021년엔 “웹젠이 게임 ‘R2M’로 ‘리니지M’을 표절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지난해 8월 1심에서 엔씨소프트가 승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을 인정하며 웹젠이 엔씨소프트에게 10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다만 저작권 침해에 대한 엔씨소프트의 주장은 기각했다. 이 재판은 웹진이 항소하고 엔씨소프트도 보상금을 매출 기준으로 다시 산정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항소하면서 2심이 한창이다.

R2M은 소송이 걸린 뒤 약 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서비스되고 있다. 서비스 중지 명령에 대해 웹젠이 낸 강제집행정지 청구를 법원이 인용한 덕분에 항소심 판결 선고시까지 서비스 운영이 가능해져서다. 엔씨소프트는 2016년 이츠게임즈의 게임 ‘아덴’을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이츠게임즈 모회사인 넷마블과 합의해 조정으로 소송을 끝냈다.

업계에선 엔씨소프트가 경쟁사 게임들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데엔 자체 IP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매출 1조7798억원, 영업이익 137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각각 31%, 75% 줄었다. 리니지 시리즈의 매출이 줄어든 결과다. 지난해 12월 내놓은 신작 ‘쓰론앤리버티(TL)’도 초기 흥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올 상반기 비용 효율화에 집중한 뒤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실적 개선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