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 창작자들은 외줄 타기를 한다. 소재를 자극적으로 포장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의 관심을 모아야한다.

최근 국내 창작극들에서 약자의 이야기를 흥미로우면서도 진정성 있게 전하려는 시도들이 눈에 띈다.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 한국인-필리핀 혼혈 '코피노' 등의 주인공이 신선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모두의 고통을 인정해줘…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약자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신선한 스토리텔링 선보이는 초연 창작극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주인공 키키가 자신의 인격장애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는 창작 초연 뮤지컬이다. ‘너의 고통을 인정해’라는 대사처럼 치료 과정에서 가족과 친구들의 지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메시지를 전한다.

인격장애라는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키키가 환자 입장에서 자신의 치료 과정을 '시작-안전한 상황 만들기-트라우마 극복-화해' 순으로 관객에게 직접 노래와 함께 설명한다.

어린이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알록달록한 의상과 무대 디자인으로 따뜻하고 희망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스펠, 발라드,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도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키키의 역할을 남녀 배우로 더블 캐스팅한 점도 인상적이다. 공연마다 연인관계와 부모와의 관계에 변주를 줘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길이 닿도록 한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솔직하게 묘사하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따뜻한 작품이다. 공연은 2월25일까지 서울시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열린다.

◇한국인·코피노 이복 자매의 엇갈린 삶 …연극 '테디 대디 런'
약자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신선한 스토리텔링 선보이는 초연 창작극들
연극 '태디 대디 런'은 한국·필리핀 혼혈아를 일컫는 코피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필리핀에서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16살 한국인 희정과 그를 돕는 15살 혼혈아 니나의 여정을 그린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이 독특하다. 이 작품은 2개의 파트로 나뉜다. 희정과 니나가 각 파트의 화자를 맡아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2명의 시각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작품은 희정이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으면서 시작한다. 위험천만한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의 슬럼을 전전하며 두려움에 떨고 아버지를 둘러싼 비밀을 마주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니나가 화자로 나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점들을 해소한다. 니나는 희정의 아버지가 필리핀 여성과 낳은 혼외 자식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필리핀에서 '테디'라고 불리는 그들의 아버지는 일개 사업가가 아니라 악명높은 마약 거래상이다.

희정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유복하게 자란 반면 니나는 어머니를 에이즈로 잃고 갱단에 들어간다. 니나는 어머니를 버린 죄를 복수하기 위해, 희정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테디'를 찾아 나선다. 같은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난 두 주인공의 삶을 대비해 어른들의 무책임함이 낳은 코피노들의 아픔을 꼬집는다.

이복 자매의 엇갈린 운명을 비교하는 독특한 구성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공연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오는 25일까지 열린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