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PKM갤러리서 20년 만에 한국 개인전
부드러운 카펫 위 환상적 세계…獨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 개인전
"제가 보기에도 (제 작업이) 서로 너무나도 달라 혼란에 빠졌던 적이 있었죠. 그러나 이것은 마치 각기 다른 가지가 있는 나무와도 같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실체가 있는 것을 찍은 구상적인 사진을 다루는 가지가 있고 추상적인 사진이나 비(非) 사진적인 작업을 하는 또 다른 가지가 있는 하나의 나무인 것이죠. 서로 다른 기법의 사진으로 이뤄진 하나의 나무로 볼 수 있죠."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66)는 그의 설명대로 끊임없이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여권 사진'으로 불리는 고전적인 초상 사진 연작, 인터넷에 떠도는 데이터를 수집·편집한 이미지, 일본 만화책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을 가공해 인화한 '서브스트라트' 연작 등 1970년대 후반부터 그가 발표한 사진 시리즈는 25종류가 넘는다.

21일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개막한 개인전에서는 카펫에 이미지를 출력한 새로운 연작이 소개된다.

부드러운 카펫 위 환상적 세계…獨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 개인전
2022년 시작한 'd.o.pe' 연작은 최장 290cm 크기의 대형 카펫 위에 프랙털(fractal. 기본적인 형태 요소가 커지거나 줄어들면서 반복적으로 증식되는 구조) 패턴을 염색에 가깝게 정교하게 출력한 것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생성한 프랙털 패턴을 겹치고 합성해 탄생한 환상적인 이미지들은 마치 해저 세계나 우주 같기도 하고 피부 조직을 아주 정밀하게 확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칸디다 회퍼, 토마스 스트루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등과 함께 독일 뒤셀도르프 사진학파의 주요 멤버 중 한 명인 작가는 "처음에는 사진이 현실을 포착할 수 있다고 믿어 다큐멘터리 스타일 작업을 했지만 이후 카메라는 앞에 놓인 것을 포착하지만 사실은 '미리 구성된 진실'을 포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신문사진(Zeitungsfotos)이나 야간 투시경 등을 이용한 사진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해 영역을 넓혀 왔다.

이번 작업에서는 이미지를 인화지가 아닌 카펫에 출력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캔버스 천에 출력을 시도한 적이 있어서 여러 가지 직물에 출력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캔버스 천에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미 회화적인 것으로 시도한 적이 있고 이 이미지들은 회화가 아니니까요.

새틴은 어떨까 생각했지만 크기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벽에 카펫을 걸어놓는 전통이 있는 벨기에의 회사에서 벨루어(velour) 카펫에 출력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카펫은 세부 이미지를 평면의 인화지처럼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이미지 속에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은" 깊이감을 부여했다.

이 작업을 사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작가는 "이 작업엔 카메라가 관여하지 않았고 여러 기술을 탐구하는 연구의 일환"이라며 "이 작업은 사진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부드러운 카펫 위 환상적 세계…獨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 개인전
실제 작가는 디지털로 대표되는 여러 기술을 작업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스승인 (독일 사진 거장) 베른트 베허는 "어떤 매체로 작업한다면 네가 만드는 이미지에도 그 매체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시대 사진가, 혹은 사진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로서 기술적인 문제들을 사진으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죠. 2000년 이후 사진은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매체이며 이 기술이라는 것은 항상 개선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방향은 결과적으로 디지털화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
그러나 작가는 최근 예술계에도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는 인공지능(AI)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AI는 게으른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문제는 AI가 학습된 이미지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죠."
4월13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2004년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루프의 개인전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