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사진=뉴스1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사진=뉴스1
테라, 루나 사태의 핵심으로 꼽히는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미국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몬테네그로 현지 일간지 포베다는 21일(현지시간)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이 이날 권씨의 미국 송환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권씨에 대한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은 기각됐다. 이에 따라 권 대표는 미국에서 죗값을 받게 됐다.

권씨의 송환이 결정된 건 그가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 공항에서 여권 위조 혐의로 검거된 지 11개월 만이다. 도피 기간으로 따지면 22개월 만이다.

권씨 검거 이후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본래 범죄인 송환은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이 결정하지만, 권씨가 범죄인 인도와 관련한 약식 절차에 동의한 이상 법원이 결정 주체라고 판단해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은 지난 8일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에 권씨를 한국과 미국 중 어느 곳으로 인도할지 직접 결정하라고 명령했다.

권씨의 현지 법률 대리인 고란 로디치 변호사는 그가 법적으론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송환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권 씨 역시 지난해 법원을 통해 한국 송환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 매체와 외신 보도를 통해 미국 송환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흘러나왔다. 안드레이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리의 주요 외교 정책 파트너"라며 "미국과 범죄인 인도를 위한 법적 틀을 마련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한 권씨의 송환지 결정에 대해 "범죄의 중대성과 범죄인의 국적, 범죄인 인도 청구 날짜를 기준으로 결정한다"고 전했다.

현지 보도를 통해 미국은 한국보다 범죄인 인도 청구를 조금 더 일찍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내 법무부는 미국보다 하루 빠르게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 정부는 권 대표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의지를 드러내며 자국 송환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방검찰청은 지난 23일 권 대표가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위조 여권 사용으로 체포되자마자 그를 증권 사기 등 총 8개 혐의로 기소했다. 또한 몬테네그로에 있는 대사관과 이를 통해 구축된 외교 채널을 가동해 조속히 대처했다는 평이다.

한국은 몬테네그로에는 우리 대사관이 없지만, 인접 국가인 세르비아 대사관으로 몬테네그로를 관할하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몬테네그로 외교부와 법무부 당국자들과 잇따라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는 50조 원의 피해를 남긴 가상화폐 테라, 루나 폭락 사태의 책임자로 꼽힌다. 테라 측은 테라 코인이 알고리즘에 따라 가격이 고정되는 '스테이블 코인(가치 안정화 코인)'이라 홍보했다. 현실 경제에서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고,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테라 블록체인 지급결제 서비스를 도입해 수요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블록체인 지급결제 서비스는 금융규제 상 허용될 수 없는 만큼 애초에 실현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권씨가 미국으로 인도되면 한국보다 중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이지만,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해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하다. 실제로 권씨 체포 이후 루나, 테라 피해자 2700여 명이 모인 네이버 카페에서는 그의 국내 송환을 두고 무기명 찬반 투표를 진행했는데, 미국으로 인도돼 처벌받아야 한다는 수가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2년 2월 권씨와 테라폼랩스가 "수백만달러의 암호화 자산 증권 사기를 조직했다"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고, 뉴욕 연방 검찰은 한 달 뒤 사기·시세 조종 등 8개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앞서 고객 자금 수십억 달러를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돼 미국 연방법원에서 지난달 유죄평결을 받은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올해 3월 선고공판에서 사실상 종신형인 100년형 이상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되고 있다.

한편 권씨의 측근으로 몬테네그로에서 함께 검거됐던 한창준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1일 테라 프로젝트가 정상 작동하는 것처럼 꾸며 코인을 판매·거래해 최소 536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국내에서 구속기소됐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