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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의 실패에서 본 가상자산의 미래 [한경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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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있었던 1880년대, 미국의 도시는 두 가지 빛으로 밤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가정은 저전압 직류 전력이 백열등을 밝혔고 밤거리는 고전압 교류 전력으로 아크등을 밝혔다.

미국 가정과 사업체에 직류 전력을 공급하던 업체는 토머스 에디슨의 회사였다. 백열등을 발명하고 전기 관련 특허를 여럿 보유한 에디슨은 저전압 직류전기를 가정과 사업체에 보급하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에디슨의 저전압 직류 전력 시스템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110볼트 직류전기를 생산하여 공급할 수 있는 구간이 1마일(약 1.6㎞)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발전소가 도시 곳곳에 지어져야 했다. 그래서 에디슨의 계획은 도시 곳곳에 발전소를 짓고 전선을 연결하여 전력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교류 변압기(transformer)가 발명된다. 이 변압기를 사용하면 먼 곳에 있는 발전시설에서 생산한 전기를 승압해서 도시까지 저손실 송전한 후 다시 강압 과정을 거쳐 저전압으로 사용할 수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교류전력 공급 사업에 대대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했던 한 엔지니어가 모터, 발전기, 변압기, 전력 전송선 등 여러 특허를 가지고 있었는데, 웨스팅하우스는 핵심 개발자로 그를 영입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니콜라스 홀트 주연의 2017년 영화 <커런트 워>로도 잘 알려진 ‘전류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에디슨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그는 기득권의 길을 택했다. 더 효율적인 교류전력의 매스어답션(mass adoption)을 돕거나 받아들이는 대신, 교류전력의 시장 진입을 차단하려 했다. 당시의 사람들이 교류 전력은 주로 가로등에 쓰이고 매우 높은 전압을 사용한다는 상식을 가진 것에 착안, “위험한 교류전력이 사람을 죽인다”는 프로파간다를 펼친다.

에디슨은 당시 처음으로 도입된 ‘전기의자’에 웨스팅하우스 교류 발전기를 사용하게 하고, 1890년에 전기의자를 사용한 첫 사형이 집행되자 ‘웨스팅하우스되다(Westinghouse-ed)’라는 단어를 퍼뜨렸다. 1903년에는 교류 전기의 위험성을 알린다며 웨스팅하우스 발전기를 사용해 교류전력으로 코끼리를 죽이는 시연을 벌이기까지 했다.

에디슨은 왜 그랬을까?

위인 반열에 오른 천재 발명가 에디슨은 대체 왜 그랬을까? 필부에 불과한 필자가 감히 추측하건대, 에디슨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교류 변압기 등의 도입은 에디슨이 직류전력 보급사업이 이미 자리를 잡은 후 일어났고, 에디슨은 하던 사업을 접고 처음으로 돌아가 교류전력 사업을 새로 시작할 이유도, 그럴 의지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에디슨은 사회적 영향력과 수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점효과와 기득권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에디슨의 전력공급 계획에는 매우 많은 발전소들이 건설돼야 했고, 이는 에디슨의 회사 수익구조에 핵심적인 내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갑자기 교류전력의 사업성이나 공익성이 증명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은 수많은 발전소를 다 폐쇄하거나 앞으로 지을 계획들을 취소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교류전력의 시장 진입을 막는 것이 에디슨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현명한 판단이었을 것이다.

에디슨에게도 변화할 기회는 있었다. 웨스팅하우스의 승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그 젊은 엔지니어가 에디슨의 회사에 일할 때 에디슨은 그 엔지니어에게 직류 발전기와 모터 관련 문제를 해결하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유럽 출신인 그 엔지니어가 문제를 해결하자 “자네는 미국식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군! (You don’t understand American humor!)” 이라고 말하며 가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시대와 역사는 교류전력을 택했고, 지금도 우리는 가정에서 교류전력을 사용하고 있다.

에디슨의 말로는 아름답지 못했다.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Edison General Electric)사는 또 다른 교류전력 공급자이자 웨스팅하우스의 라이벌인 톰슨 휴스턴(Thompson-Houston) 사와 합병을 통해 현재의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사가 되었다.

제도권 금융과 에디슨, 그리고 블록체인

현대적 의미의 금융산업은 대항해시대인 17세기 영국에서 태동했다. 식민지 탐사라는 프로젝트에 자본가들이 투자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고도화되어 주식회사가 만들어졌다. 실패에 대비해 보험이 만들어졌고, 영국 왕실은 국채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400년이 지나 금융산업은 사람들의 삶 곳곳에 자리 잡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금융의 본질은 자금의 중개다. 즉, 금융사업자들은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이 있는 사람을 연결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수요와 공급 사이에서 벌어들이고 굴린 돈이 거대화되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말, 비트코인 백서가 세상에 나왔다. 공개키와 비밀키, 타원형 암호 등 복잡한 기술을 통해 비트코인이 구현하는 것은 중간자 없는 금융이다. 금융기관이나 국가의 도움 없이 가치를 스스로 소유(self-sovereign)하고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인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정신은 이후 이더리움을 위시한 수많은 블록체인으로 계승되었고, 시간이 지나 탈중앙화 금융(DeFi)이라는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처음 공개됐을 때, 제도권 금융은 큰 관심이 없었다. 이더리움과 블록체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ICO와 탈중앙화 금융이 등장하자, 각국 정부와 제도권 금융은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소리높여 외친다.

에디슨의 ‘교류가 사람을 죽인다’라는 프로파간다가 떠오르는 것은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중간자가 없는 금융은 중간자가 있는 금융보다 효율적이고 공익적이다. 이는 교류전력 시스템을 사용하면 도시 곳곳에 발전소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직류전력 특허를 가진 에디슨처럼 기득권을 선점한 현대의 금융사들은 이미 아주 단단하게 자리 잡은 중간자 시장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간자가 없는 시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설하며 가상자산과 탈중앙화 금융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에디슨의 공작으로 교류전력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는 교류전력을 택했다. 웨스팅하우스의 입찰가격이 에디슨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에도 교류전력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멀리 있는 도시에 전력을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세가 기울자 에디슨의 회사도 교류전력 시장에 진입했고, 결국 교류전력 회사와 합병했다.

제도권 금융과 가상자산도 비슷한 과정을 밟아나가고 있다. 가상자산은 범죄의 온상이라는 인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리더인 블랙록과 피델리티 등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신청하고 승인을 받아내어 고객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원했기 때문이다. 뱅가드 등 일부 금융사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 취급을 거절했는데, 그로 인해 고객들이 이탈한다고 한다.

시장은 이토록 냉정하고 강력하다. 프로파간다는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 현대의 사람들은 사람과 코끼리를 죽일 만큼 위험한 것은 교류전력이 아니라 전압과 전류량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직류든 교류든 고압 전류를 생명체에 인가하면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에디슨이 ‘교류전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겠다’며 코끼리를 사형시킨 사건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가상자산이 사기와 자금세탁이 사용되어 위험하다고 하는데, 사실 사기와 자금세탁은 제도권 금융에서 현금을 사용해 더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기득권은 오늘도 ‘가상자산은 위험한 범죄의 온상이다’라는 프로파간다를 펼친다. 수십 년 후, 세상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P.S. 에디슨에게 조롱당하고 웨스팅하우스와 교류전력의 승리를 이끈 유럽 출신 엔지니어의 이름은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다. 최근에는 그의 이름이 유명 전기차 브랜드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 연구위원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 연구위원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연구위원이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