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지시 없는 의료행위, 의료법 위반 소지
간호업계 "간호법처럼 업무위임 명시한 법 필요"
전공의 이탈에 업무 떠맡은 간호사들…업무 가중에 '위법' 우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수천 명이 사직서를 내고 의료 현장을 이탈하면서 이들의 업무를 일부 떠맡게 된 간호사들이 업무 가중과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우려를 호소하고 있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의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이들 병원의 소속 전공의 55% 수준인 6천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 제출자의 25% 수준인 1천630명은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

필수의료의 핵심 인력으로 응급실, 당직 근무 등을 맡는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나면서 이들의 업무를 대신할 인력으로 간호사들이 주목받는다.

특히 '수술실 간호사'로도 불리며 의사 역할을 대신하는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전공의 업무 공백에 투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임상전담 간호사'로도 불리는 PA 간호사는 수술장 보조 및 검사시술 보조, 검체 의뢰, 응급상황 시 보조 등의 역할을 하며, 위법과 탈법의 경계선상에서 일부 의사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전국에서 1만명 이상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법 제2조는 간호사의 임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진료의 보조'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의사 수가 부족한 병원에서 사실상 의사가 해야 할 일을 일부 대신해 온 것이다.

수술실 보조나 수술 후 처치 등 전공의가 해야 하는 일을 대신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담당 교수와 함께 회진을 돌기도 한다.

복지부는 전공의 업무중단으로 발생할 '의료대란' 대책으로 비대면진료 확대, 공공의료기관 진료 연장 등과 함께 PA 간호사 역할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각 병원, 대한간호사협회 등과 논의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간호사들의 업무 가중에 대한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공의 이탈에 업무 떠맡은 간호사들…업무 가중에 '위법' 우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이탈한 일부 병원들은 간호사 당직 체제를 변경하고 담당 업무를 확대하는 등 '응급 상황에 따른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노조가 취합한 바에 따르면 채혈, 요도관 삽입 등 기존 인턴 의사가 하던 업무를 상당수 간호사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무가 늘어남에 따라 병원 간호부에서는 초과 근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신규 PA 간호사 채용 일정을 앞당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는 "특히 수술실 보조 간호사들을 중심으로 업무가 늘어나고 있고, 전공의 업무 공백에 따라 추가 업무가 배분되는 중"이라며 "하루 이틀이야 괜찮겠지만 장기화하게 되면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사들은 업무 과중에 따른 피로 외에도 의사 업무를 대신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불법행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전문간호사협회는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진료지원인력(PA)이 의료 공백을 메꿔야겠지만, 이들의 업무 범위는 법에 명시돼 있지 않아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불안한 외줄 타기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간호사회는 "파업에 대한 대책으로 '불법'인 PA 간호사를 공공연하게 활용하겠다는 정부가 이해하기 어렵다"며 전공의들에게 "불법 의료 행위를 방관하지 말고 돌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의료연대본부는 병원들이 전공의들의 진료 중단으로 생긴 의료 공백을 간호사에게 메우게 하는 등 '불법의료'가 자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간호사들은 이번 사태를 맞아 '간호법' 제정을 추진하고 업무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정부의 PA 간호사 활용에 동의한 바 없다"며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 상황처럼 정부가 시키는 대로 불법 의료행위에 간호사가 투입돼 의료공백을 메꾸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국의 모든 간호사들은 지난해 간호법 추진 과정에서 있었던 '준법투쟁'을 통해 간호사 업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립됐다"며 "보호체계를 법에 명시해 달라"고 주장했다.

간호사의 처우 개선과 업무 범위를 명시한 간호법은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의 반발 끝에 지난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국회 재표결 부결로 폐기됐다.

간호협회 등은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해진 업무 외 불법의료행위를 거부하고 자체 신고센터를 만들어 수집하는 등 '준법투쟁'을 벌인 바 있다.

간호협회는 "간호사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의료 공백을 메꾸는 데 참여할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먼저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법적 보장과 안전망 구축을 약속해 이를 법적 보호 체계에 명시화해야 간호사들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